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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조금 관점이 다릅니다.
당시에는 대한민국 헌법에 의거하여 민주주의 공화국이었고 따라서 사상의 자유가 있습니다.
따라서 공산주의 정당을 설립하는 것에 대해서 문제가 될 이유가 없습니다.
그 후 공산주의 정당이 전쟁을 일으키며 문제가 된 것인데요.
저 당시 박정희가 공산주의 정당이 전쟁을 일으키리라는 걸 알았을까요?
사상의 자유가 보장이 되지 못한 당시의 상황의 문제이죠.
물론 그러한 상황을 겪고 본인도 똑같이 한 것에 대해서는 할말이 없습니다. 저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당연히 남로당 빨갱이짓을 한 사람을 욕하는건 당연한거 아닌가여?
그런데 사상의 자유라고 하면서 남로당 활동한 사람이 문제가 될게 없다고요 ? 헐 ~~
그럼 이석기는 뭔가요 ?
최소한의 반론을 기대 하실거면 최소한 자기가 무슨글을 썻는지는 알고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요?
제가 무슨 글을 썻는지 저는 알아요 카울님.
왜 모르겠어요 ^^ 제가 썻는데. 게다가 추론도 했는데 모를리가요.
대한민국의 사람이라면 왜 남로당 빨갱이짓을 한 사람을 욕하는게 당연한가요?
대한민국의 헌법 그 어디에도 특정 당이나 혹은 사상을 가지면 안된다거나
반역자라고 안나오는데요.
물론 전 싫어요. 남로당도 북한도 그리고 현재 저들이 하는 사이비 공산주의도 말이죠.
근데 저는 싫어하는 이유가 정확하게 존재해요.
카울님은 왜 싫어하세요? 저는 저들이 사회주의라고 자처하면서 자본론은 커녕
레닌의 사상하고도 전혀 다른 노선을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걸었기에 싫어요.
저는 박정희가 친일파라서 남로당이라서 싫은게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살아왔고 많은 국민들을 객관적인 이유도 없이 고문하고 처벌하고 사형해서 싫어요.
저는 그가 대한민국의 헌법에 위배되는 반국가적인 행위를 해서 싫거든요.
그런데 반공도 진짜 반공 , 가짜 반공이 있엇던가?? 금시초문이고 이거 해괴한 이론이고
우익이 내세운게 가짜 반공이면 진짜 반공은 누가 주도 했단 건지??...
한상범 교수가 지난 현대사 가지구서 재대로 글을 쓴다면 반공을 구실로 어느 정권 독재자가 정치적 반대파 탄압에다 사용..이렇게 써야 하거늘
우익(右翼)
일반적으로 정치 및 사회 문제에 대해 변화보다는 안정, 분배와 복지보다는 성장과 경쟁, 평등보다는
자유를 강조하는 경향을 지닌 정치사상이나 정치세력
프랑스혁명(1789∼1799) 당시 제1기 국민의회(國民議會, National Assembly)에서 의장석을 기준으로 왼쪽에 비특권계급인 제3신분을 대표하는 공화파가 앉았던 것에 비해 오른쪽에 왕당파가 주로 앉았던 데서 유래.
국가주의(國家主義,)
절대군주의 폭력적 통치기구(관료와 상비군)의 완성으로 현실적 기초가 먼저 마련되고, 이론적으로는 J.보댕의 주권이론과 T.홉스의 사회계약론에 의해서 완성.
국가를 최고의 조직으로 보고, 국가 권력을 해당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중심으로 인정하는 정치 원리를 말한다. 국민주의 또는 민족주의와 같은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며 국가사회주의를 의미하는 경우도 있으나, 엄밀하게는 그것과 다르다.
메카시즘(McCarthyism)
미국 위스콘신주(州) 출신의 공화당 상원의원 J.R.매카시의 이름에서 나온 말이다. 1950년 2월 “국무성 안에는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매카시의 폭탄적인 연설에서 발단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냉전이 심각해지던 상황에서 전통적인 미국자본의 시장이던 중국의 공산화와 잇달아 발생한 한국의 6 ·25전쟁 등 공산세력의 급격한 팽창에 위협을 느낀 미국국민으로부터, 그의 주장이 광범한 지지를 받았다.
매카시즘이 먼저 공격목표로 삼은 것은 중국정책에 영향력이 컸던 외교관, 국무성 및 중국통 정치학자 오언 래티모어, 국제법학자 제삽 등이었는데, 대통령 H.S.트루먼도 공산주의자에게 약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당시 국무장관 J.F.덜레스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매카시즘의 공포에 떨었고, 그 때문에 미국의 외교정책이 필요 이상으로 경색된 반공노선을 걷게 되었다. 유력한 정치가나 지식인들도 매카시즘에 두려움을 느끼고 그에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매카시는 육군에 도전한 것이 치명상이 되어서 마침내 1954년 상원의 사문결의(査問決議)에 의하여 실각하였다. 매카시는 히틀러와는 달리 아무런 비전도 가지지 못하였으나, 보기 드문 선동가였다. 그가 미국의 대외적 위신이나 지적(知的) 환경에 끼친 손해는 막대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