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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당시 친일파들이 어디로 몰렸을까여??
건준은 민족주의자+사회주의자 연대라.. 재산가진 친일파들은 절대 낄수가 없고..
건준에 대항해서 만든 우파정당인 한민당에 몰렸던게 친일파들이었슴.
지도자로 독립운동경력있던 지식인들을 내세운건데.. 이들역시 집안자체가 부유한 출신들에.. 일제시대때 해외유학갔다온 돈많던 자들이 대부분이었슴.
한민당은 간단히 정리하면.. 독립운동경력있는 지식인들 앞세우고.. 돈좀있던 친일파들이 대거 가담한 정당임..
그래서 대중 지지도는 없으면서도 자금력은 좋아서.. 이승만에 돈주고 김구에 돈주고 했던것임..
해외유학등으로 영어가 되던 자들이라.. 미군정들어서고 미군정이 손잡은게 이 한민당이었던거고.. (임정이 인정안되고)
이들에 의해서 군관정계에 친일파들이 대거 기용되게 된거였져.
님이 말하는 친일파가 득실거렸던 이승만 정권이라는게 바로 당시 이승만 밀던 한민당애덜 말하는것임.
이승만이 대통령 됐을때 상황이.. 정권의 힘인 군, 경찰이 이미 미군정때 한민당에 의해서 일제시대때 경찰 군인들도 되어있던 상황에.. 여순반란에 제주43 터지던 와중에.. 친일청산 못했다라고 까는 무식한짓임..
반민특위 해산 1년뒤 뭐가 터졌는지나 알길.. 625났으니깐..
건준을 만든 여운형 역시 친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닙니다. 그가 전쟁말기 일제의 전쟁참여를 독려했다는 근거자료가 분명히 있으니까요..
다만 그가 한독당이 만든 리스트에는 안올라간걸로 봐서 2500만명중 300등안에는 안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그 시기에 그렇게 안했으면 얼마나 큰 고통을 받아야 했을지를 고려해줘야 할 부분이고요.
솔직히 당시 3000만명 국내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크건 작건 친일을 안할수가 없는 입장이었어요. 세뇌의 측면도 있고 불이익의 측면도 있습니다.
이 정도 고뇌는 당시 돌아온 임시정부- 이승만,김구 한독당인사들도 고민을 햇던 겁니다.
이승만은 이 상황에서 모든 과거를 덮고 범민족이 단결하자라는 입장을 취합니다.
당시 상황의 측면도 고려해줘야 하며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데 그나마 기술력과 능력을 가진사람들을 포용해야한다는 측면도 고려한거지요.
김구선생의 경우 아무리 그래도 악질 친일파 100명은 처벌해야한다는 입장이었지요.
아무리 그래도 2500만명중에서 100정도의 최악질도 처발안할수 있냐?라는 반문인게지요. 그래서 나온게 김승학선생의 저 리스트가 나왔던 겁니다. 그냥 재미삼아 만든 리스트가 아니에요 김구선생 즉 임시정부의 의지가 담긴 리스트입니다.
이승만박사와 김구선생의 입장과 고민은 충분히 인정합니다.
확실한건 한민당을 주도한 인사들은 이 100위권 안에 들어가는 인물들이 줄줄줄 있었지요.
결국 한민당으로서는 살아남기 위해 이승만 뒤에 줄을 섰던것이고 이승만의 과오란 바로 민주당을 야당으로 인정해준 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