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생각이 전부 외적 존재들의 메세지임을 알아야 합니다.
능엄경에 석존과 아난의 대화에서 보고 듣는 놈이나 깨닫는 마음이 내가 아니라고 합니다. 상수멸(멸진정)의 뜻 또한 생각 받음이 멸한 자리라 하며, 생각 자체가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임을 내포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경에는 일체지의 깨달음 또한 부처님의 위신력 덕분이라 합니다.
그래서 불경에 보면 주는 놈이 누구이며 받는 놈이 누구인가 이렇게 관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수행의 가장 기본 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내가 아니며, 글을 보고 생각하는 여러분 또한 여러분이 아닙니다.
지금 이 생각은 누가 보냈는가? 이 희노애락은 누가 느끼는가? 이 생각은 내 생각이 아니요(무아=비아) 이 느낌은 내가 느끼는 것이 아니다(무아=비아), 이렇게 염하고 관해야 합니다.
다음은 "이렇게 염하는 작자(作者)가 누구이며 또, 이렇게 관하는 작자는 누구인가?" 이렇게 수행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생각도 마음도 내가 아니기 때문에 나라고 할만한 것이 없어 보이고 공해 보입니다. 그리고 이 공하게 보는 주체도 내가 아니라고 관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에만 함몰되면, 현실에서 가족의 고통도 가족이 느끼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보고 슬픔을 느끼는 이 감정도 내가 아니다 라고, 진제(이데아)와 속제(속세)를 혼동하여 현실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반야경에서 (현실에서의) 자비는 여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자비를 여의지 않으면 결국 분별하게 됩니다. 분별하지 않고 수행하게 되면 위와 같은 공사상으로 빠지기 때문입니다. 이를 공에 떨어진 외도 즉 낙공외도라고 합니다.
현실에서, 어떤 사안에 대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그 선택이 올바른 것인지 아닌지를 잘 분별하여 지나치게 비상식적이어서 남을 해치는 일이 되는지를 잘 살펴 선택해야 합니다.
그런데 삿된 사유는 오히려 마음의 행복감과 함께 오거나, 또 바른 선택을 할때 는 오히려 그것을 방해하는 마장이나 고통이 오는 경우가 많아서, 대부분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특정 경계를 조금 맛보고 거기에 함몰되어 인생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마장을 줄이기 위해, 염불수행을 통해 불보살의 가피력을 받는 것이 우선이고, 불경을 방대하게 읽어 가지가지 방편을 많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불법에 비추어 분별하고 선택하는 수행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를 법등명이라 하는데, 불법은 방대하여 어떤 의문이나 사유가 떠오를 때 여기에 맞는 답을 도출하거나 반대로 삿된 생각일 경우 분별하여 쳐내는것이 쉬워지게 됩니다.
일종의 통찰력인데, 반야(지혜)바라밀과 선정(멸진정)바라밀이 같이 되는 수행이며 정혜쌍수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이 통찰력 또한 알고보면 부처님의 가피력을 받아 된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공덕이라 생각하는 망상을 없애야 하는데, 이것을 "얻을바가 없음(이무소득고)" 이라고 합니다.
다만 부처님의 지혜에 순응하여 분별하고 선택하기 때문에 자비로운 성품은 훈습됩니다.
자신의 법신은 오로지 분별(제 7식인 말라식)하여 선택만 할 뿐입니다. 그런데 그 법신도 번뇌구름에 가려져 있기 때문에 올바르게 분별하지 못하고 자주 장애와 망상의 결과를 낳게 합니다.
하지만 번뇌구름이 걷히고 불지혜의 햇볕을 받아 올바른 선택지가 생기게 된다면, 그래서 그 빈도가 높아진다면, 악업의 족쇄에서 서서히 풀려나게 될 것입니다. (구름나면 햇볕나제, 구름나는 것 따로 있고 햇볕나는 것 따로 있던가? - 성철스님)
이렇게 업을 닦아 나가다가 최후에 마왕 파순의 시험(구경각)까지 이겨내고 대자대비심을 깨닫게 된다면 완전한 자유를 얻은 참나로서 완전히 깨닫게 되어 제법실상의 경계를 볼 수 있게 됩니다.
지혜의 끝은 선정(멸진정)이며 (속세의 지혜는 방편이므로 얻을바가 없고 - 이무소득고) 선정의 끝은 지혜(자비는 여의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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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심밀경 中>>>
“선남자여, 만일 각각 다른 계경(契經)과 나아가 논의(論議)를 반연하여 한 덩이로 삼고 뜻을 지어 생각하면, 마땅히 알라. 이는 소총법을 반연하는 사마타(선정)ㆍ비파사나(위빠사나=지혜)이다. 만일 나아가 받고 생각한 계경 따위의 법을 반연하여 한 덩이로 삼고 뜻을 지어 생각하되 각각 다르게 반연하지 않으면, 마땅히 알라. 이는 대총법을 반연하는 사마타ㆍ비파사나라 한다. 만일 무량한 여래의 가르침과 무량한 법구(法句)의 문자와 무량한 등등의 지혜로 비추는 것을 반연하여 한 덩이로 삼고 뜻을 지어 생각하며, 나아가 받고 생각한 것을 반연하지 않으면, 마땅히 알라. 이를 무량총법을 반연하는 사마타ㆍ비파사나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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