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22일 금요일
[유전] [오전 12:00] (무량의경덕행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이 한 법문은 ‘무량의(無量義)’라 하나니, 보살이 무량의를 배우고자 하면 마땅히 이렇게 관찰할지니라.
‘온갖 법은 본래부터 성품과 모습이 공적하여 크지 않고 작지 않고 나지 않고 멸하지 않으며, 머무르지 않고 움직이지 않으며, 나아가지 않고 물러나지 않으며, 마치 허공과 같아서 두 법이 없거늘 중생들은 허망하게 계교하여 이것이다, 저것이다, 얻는다, 잃는다 하고 착하지 못한 생각을 일으키어 여러 가지 나쁜 업을 짓고, 여섯 갈래[趣]를 윤회하면서 여러 고통을 받다가 한량없는 억겁(億劫) 동안 벗어나지 못하는도다.’
[유전] [오전 12:00]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자세히 관찰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큰 자비의 마음을 일으키어 건져 주고자 할 것이며, 또 온갖 모든 법에 깊이 들지니라.
법의 모습은 이러하여 이러한 법을 내며, 법의 모습은 이러하여 이러한 법에 머무르며, 법의 모습은 이러하여 이러한 법을 다르게 하며, 법의 모습은 이러하여 이러한 법을 멸하게 하며, 법의 모습은 이러하여 능히 악한 법을 내며, 법의 모습은 이러하여 능히 착한 법을 내니, 머무르고 다르고 멸하는 것이 이와 같으니라.
[유전] [오전 12:01] 보살이 이와 같이 네 가지 모습[四相]의 처음과 마지막을 관찰하여 모두 두루 안 뒤에는 모든 법이 생각생각에 머무르지 않고 새록새록 나고 죽는 것을 관찰할 것이며, 즉시에 나고 머무르고 다르고 멸하는 것을 관찰할지니라. 이렇게 관찰하고는 중생들의 모든 근기의 성품과 욕심에 들어갈지니, 성품과 욕심이 무량한 까닭에 설법이 무량하고, 설법이 무량하므로 또한 뜻이 무량하니라.
[유전] [오전 12:01] 무량한 뜻[無量義]이란 한 법에서 나왔나니, 그 한 법이란 곧 모습 없음[無相]이니라. 이러한 모습 없음[無相]은 모습도 없으며 모습도 아니니, 모습이 아니면서 모습이 없으므로 실상(實相)이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진실한 모습에 머무르면 일으키는 자비는 밝고도 헛되지 않아 모든 중생에 대하여 참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느니라. 괴로움을 덜어주고는 다시 설법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쾌락을 받게 하느니라.
[유전] [오전 12:02] 선남자여, 만일 보살이 이와 같이 하나의 법문인 무량의(無量義)를 닦으면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빨리 얻으리라. 선남자여, 이와 같이 매우 깊고 위없는 대승(大乘)의 무량의경(無量義經)은 문리(文理)가 참되고 바르며 존귀하여 더 높은 것이 없고,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함께 수호하시며, 여러 마군들이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며, 온갖 사견(邪見)과 생사에 무너지지 않느니라.
그러므로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만일 위없는 보리를 빨리 이루고자 한다면 마땅히 이와 같이 매우 깊고 위없는 대승의 무량의경을 닦고 배울지니라.”
[유전] [오전 12:03] 부처님께서 대장엄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여, 능히 여래에게 이러한 매우 깊고 위없는 대승의 미묘한 뜻을 물었도다. 마땅히 알아라. 그대는 많은 무리들을 이익되게 하고 인간과 천상을 안락하게 하고 괴로운 중생을 건져주니, 참되고 큰 자비이어서 진실하고 헛되지 않으리라. 이러한 인연으로 반드시 위없는 보리를 빨리 이룰 것이며, 또한 온갖 현세와 내세의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위없는 보리를 이루게 하리라.
[유전] [오전 12:04] 선남자여, 내가 도량의 보리수(菩提樹) 아래에 조용히 앉아 6년 만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한 이래 불안(佛眼)으로써 모든 법을 관찰하되 말하지 않았나니, 무슨 까닭인가. 모든 중생들의 성품과 욕심이 같지 않기 때문이니라. 성품과 욕심이 같지 않으므로 여러 가지로 설법했나니, 여러 가지 설법은 방편의 힘 때문에 40여 년 동안 한 번도 진실을 나타내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중생들의 도 얻는 것이 차별이 있어 위없는 보리를 속히 이루지 못하느니라.
[유전] [오전 12:04] 선남자여, 비유컨대 법은 물과 같아서 능히 더러운 때를 씻나니, 우물과 못과 강과 냇물과 개울과 큰 바다가 모두 더러운 때를 씻는 것과 같으니라. 법의 물도 그와 같아서 능히 중생의 모든 번뇌의 때를 씻느니라. 선남자여, 물의 성품은 하나이나 강과 우물과 못과 개울과 시내와 큰 바다가 각각 다르니라. 법성도 그와 같아서 번뇌를 씻어버리어 평등하고 차별이 없게 하지만세 가지 법[三法]과 네 가지 과보[四果]와 두 가지 도[二道]는 하나가 아니니라.
[유전] [오전 12:05] 우물이나 개울에서의 방편이 절대 바다에 도달한 자의 방편과 같을 수가 없다는 뜻이죠.
[유전] [오전 12:06] 선남자여, 물이 비록 모든 것을 씻으나 우물은 못이 아니며, 못은 강물이 아니며, 개울은 바다가 아니니라. 그러나 여래․세웅(世雄)께서는 법에 자재하시고, 말씀하신 법도 그러하여서 처음과 중간과 뒤의 말씀이 모두가 중생의 번뇌를 제거하느니라. 그러나 처음은 중간이 아니며, 중간은 뒤가 아니니, 처음과 중간과 뒤의 말씀이 말씀은 비록 하나이나 뜻은 각각 다르니라.
[유전] [오전 12:06] 대자대비심이 물이죠. 그러나 그 대자대비심도 우물에서 행하는 방편과 바다에서 행하는 방편이 다르죠.
[유전] [오전 12:10] (금강경) 수보리야, 작은 법을 즐기는 자는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에 집착하여 이 경을 알아듣지도 못하며 받아 지니지도 못하고 읽고 외우지도 못하므로 따라서 남에게 설명해 주지도 못하느니라.
[유전] [오전 12:11] 여기서 작은 법은 소승불교죠. 니까야 불교, 남방불교 데라와다 불교, 상좌부 불교 등등이 바다에 이른 법에 비해 작은 법이자 우물물이나 개울물 등에 해당됩니다.
[심연] [오전 12:14] 설명하기 어려운 것을 물로써 쉽게 비유되어 있네요.
[유전] [오전 12:16] 내가 평소에 수 없이 해왔던 비유이기도 하죠. 우물안 개구리들의 개골개골에 대해서 했던 비유죠. 그것이 경전에서도 그대로 있는거죠.
증일아함경 1011쪽
그 때 존자 아난이 세존께 아뢰었다.
"무슨 이유로 여래께서는 자리를 펴되 북쪽으로 머리를 두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열반에 든 뒤에 불법은 북천축(北天竺)에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북쪽을 향하도록 자리를 펴게 하였느니라."
(2021.07.12)
(금강경) "그러므로 여래는 대승의 마음을 낸 사람을 위하여 이 경을 설명하며, 최상승의 마음을 낸 사람을 위해 이 경을 설하는 것이니"
[유전] [오전 3:00] (소승불교, 초기불전만 수승하다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불경이 바다라면 이쪽저쪽 실개천만 왔다갔다 하는 개구리와 망둥이가 불경이라는 바다를 보고 저런건 믿을게 못된다고 하는 소리와 같습니다.
[유전] [오전 3:03] 지가 믿고싶은 것만 보고 판단하고 믿는거죠. 그게 소승불교입니다. 그런데 저런 자들도 금강경은 대부분 크게 믿고 있으면서 대부분 인용을 합니다. 금강경에 대승과 최상승을 믿고 받드는 자들을 위해 설법한 것이라는 구절을 분명히 봤을 것임에도 그런 것은 죄에 가려서 눈에 들어오지도 않거나 봤어도 금방 잊게 됩니다. 업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