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신라김씨 왕족이 스스로 흉노후손이라고 묘비문이나 기록에서 밝힘
유골 dna분석에서 김씨왕족과 흉노의 연관성이 나옴
무덤 양식은 가장 전형적인 문화지표인데 신라왕족 무덤 양식이 전형적인 흉노 무덤양식임
무덤 양식는 모방이 불가능해 각민족 나라마다 유사성이 거의없고 서로 영향을 잘 끼치지도 않는데 신라왕족무덤 양식이 흉노양식이라는것은 신라왕족 자체가 흉노라는 강력한 반증
신라 김씨 왕족이 박씨.석씨등을 누르고 왕권을 차지한후 왕을 지칭할때 사용한 마립간이라는 말은 해석하면 최고의 최고의 칸 즉 칸중의 칸이라는 뜻인데 칸은 흉노등 북방 유목민족이 최고지도자를 지칭하는 말임 예를 들어 징기스칸
그리고 금을 숭배하는 문화도 전형적인 북방유목문화임
원래 한반도 같은 농경문화에서는 금을 숭배하지않음
그래서 백제나 고구려 유적지에서는 금으로 된 유물이 거의 안나옴
반면에 늘 이동해야 하는 유목문화는 휴대하기 편한 금을 숭배
그런데 신라유물은 대부분 금으로 됨 전세계 금관 대부분이 신라유적지서 나옴
신라금관양식이 흉노와 매우 유사
신라 김씨왕족 유적지서 나온 말에 싵고 다니는 동복 즉 구리로 된 솥은 한반도나 중국농경문화에서 전혀나오질않고 흉노같은 유목민족에게서만 발견됨
유목민족들이 말에 구리솥을 달고 다니다가 그 솥으로 요리를 해먹음 그래서 유목민족 필수품
그런데 신라동복 즉 구리솥이 흉노와 매우 유사 이말은 신라 김씨왕족이 한반도 농경민족이 아니고 유목민족 그중에서도 흉노족이라는 증거
그 외에도 신라 김씨왕족이 흉노라는 증거는 더 많은데 귀찮아서 이만줄임
신라왕의 비석에 신라왕족은 흉노의 후손이라는 단서가 발견됐고,
신라귀족의 비석에 신라김씨는 흉노의 마지막 왕자인 김일제의 후손이라고 쓰인 것이 발견됐습니다.
하나도 아니고 이렇게 둘씩이나 비석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신라김씨는 스스로 흉노의 후손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 증명된 것입니다.
신라왕과 김씨 귀족들이 스스로 흉노의 후손이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이제와서 맞다 아니다라고 말할 이유조차 없어진거죠.
많은 민족이 자기 조상의 뿌리를 잘 모릅니다. 수천년 동안 어울려 살아오면서 김씨와 연관없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있습니까? 님이 김씨가 아니더라도 모계 쪽으로 김씨와 그로부터 파생된 성씨가 관련이 있을겁니다. 자기 근본을 찾으려 하는 글인데 님의 반응은 아메리카 인디언의 추장할아버지 전설 듣는듯한 반응이군요.
다른 나라에서는 별말 아니지만 우리에게는 "제 근본도 모르는 놈!" 이 큰 욕이지요. 그말은 "제 조상도 모르는 놈" 이 욕인것과 같은 말입니다. 짱깨가 만든 "흉노"란 단어가 거슬리겠죠. 저도 마땅한 이름이 없는게 한입니다.
넷상에서 '경상도 흉노'를 욕이라고 생각해 드립치는 무리가 있더군요. 저는 그들을 과감히 제 근본도 모르는 놈이라 부릅니다. 흉노에 대한 글로 지역감정 같은 걱정은 안하셔도 됩니다.
백제는 경호대장노릇하던 예석진이라는 자의 배반으로 의자왕이 사로잡히고
고구려는 동생과 쌈질하던 연남생의 앞잡이 노릇으로 순식간에 평양이 포위되어 멸망하지..
나라가 멸망하는 이유는 외적의 침입보다는 내부의 적이 배반해서 그런데..
신라는 고구려나 백제의 전철을 밟지 않고 화랑정신으로 똘똘 뭉쳐서
매초성에서 당나라 말갈 연합군을 대파하고 당나라의 야욕을 분쇄하지..
선동질하고 퍼나르기 하는 좌좀이 까불대는 사회는 안정된 사회라고 할수 없지...ㅎㅎㅎㅎ
시조의 성은 박씨, 휘는 혁거세다. 전한 효선제 오봉원년 갑자, 4월 병진[혹은 정월 15일]에 즉위하여 왕호를 거서간이라 하였다. 그때 나이 13세였고 국호를 서나벌이라 하였다. 이에 앞서 <조선유민>이 산곡간에 나누어 살며 여섯 촌을 이루었다. 첫째가 알천 양산촌, 둘째가 돌산 고허촌, 셋째가 취산 진지촌[혹은 간진촌], 넷째가 무산 대수촌, 다섯째가 금산 가리촌, 여섯째가 명활산 고야촌이다. 이들이 진한육부가 되었다. 고허촌장 소벌공이 (어느 날) 양산기슭 나정 옆의 숲 사이를 바라보니 말이 무릎을 꿇고 울고 있어 가서 보니 홀연 말은 보이지 않고 큰 알만 있었다. 알을 깨니 어린아이 하나가 나왔다. 거두어 길렀더니 나이 십여 세가 되자 빼어나게 숙성하였다. 六部사람들은 그 출생이 신이하여 떠받들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세워서 임금으로 삼았다. 진한인들은 ‘호(瓠)’를 일러 ‘박(朴)’이라 했는데 처음에 (났을 때의) 큰 알이 박[瓠] 같다 하여 ‘朴’을 성으로 삼았다. 거서간은 진한어로 왕을 이른다[혹은 귀인의 칭호라 한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주몽의 나이 22세였으며, 한 나라 효원제 건소 2년, 신라 시조 혁거세 21년 갑신년이었다. 사방에서 소문을 듣고 와서 이곳에 살고자 하는 자가 많았다. 그곳이 말갈부락과 인접하여 있었으므로, 그들이 침범할까 염려하여 물리쳐 버리니, 말갈이 두려워 하여 감히 침범하지 못하였다. 왕은 비류수에 채소가 떠내려 오는 것을 보고, 상류에 사람이 산다는 것을 알았다. 이에 따라 왕은 사냥을 하며 그곳을 찾아 올라가 비류국에 이르렀다. 그 나라 임금 송양이 나와 왕을 보고 말했다. "과인이 바닷가 한 구석에 외따로 살아와서 군자를 만난 적이 없는데, 오늘 우연히 만나게 되었으니 또한 다행스런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대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모르겠다." 주몽은 "나는 천제의 아들로서, 모처에 와서 도읍을 정하였다"라고 대답하였다. 송양이 말했다. "우리 집안은 누대에 걸쳐 왕 노릇을 하였고, 또한 땅이 비좁아 두 임금을 세울 수 없는데, 그대는 도읍을 정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나의 속국이 되는 것이 어떤가?" 왕이 그의 말에 분노하여 그와 논쟁을 벌이다가 다시 활 쏘기로 재주를 비교하게 되었는데, 송양은 대항할 수 없었다.
2년 여름 6월, 송양이 나라를 바치며 항복했다. 그곳을 다물도로 개칭하고, 송양을 그곳의 군주로 봉했다. <고구려 말로 옛 땅을 회복한 것을 '다물'이라 하기 때문에 그곳의 명칭으로 삼은 것이다.>
해석자의 시각에 따라서 다양한 역사관이 존재하듯이 위의 자료 또한 일부 사학자들이 그들의 시점에 따라 해석한 내용입니다. 우선 중화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중국한족들은 우리민족을 흉노족이라고 봤습니다. 이는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삼국지의 오나라 손권이 고구려왕을 가르켜 흉노의 수장이라는 '선우'라는 지칭을 사용한데서 알 수 있습니다. 요즘 경상도는 신라흉노족, 다른 지역은 고구려와 백제의 예맥족이라는 편가르기를 하는데 이건 한마디로 개소리입니다. 고구려 민족구성은 예맥족 뿐만 아니라 선비족, 말갈족, 초기여진족, 일부몽골족, 일부흉노족 등 다양합니다. 그리고 백제 또한 고구려 쪽에서 내려온 위의 다양한 종족들과 전라도 남부의 마한족이 결합한 국가입니다. 이는 신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지역감정을 들먹이면서 편가르기하는 것 자체가 어이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흉노족은 오랑캐가 아니라 짱깨들을 발아래 두고 부려먹었던 대제국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흉노제국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죠. 바퀴벌레같이 떼거리수가 비상식적으로 많은 중국한족들과는 다르게 흉노는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있었죠. 위의 자료에서 신라가 흉노의 후예라는 근거로 든 사슴뿔 문양은 신라 뿐만 아니라 고구려의 벽화에서도 발견되었고, 고구려 예맥각궁 또한 스키타이 흉노족의 기마형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위의 자료에서 주장하는 학설에 반하는 사실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위의 학설이 맞냐 안맞냐를 정확하게 판명하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저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는 정도로 이해하는게 맞다고 봅니다.
이때까지 눈팅만 하다가 이 자료랑 몇몇 댓글 보고나서 몇마디 적을려고 회원가입까지 했네요ㅋㅋ 위 자료의 내용과 더불어 신라의 통일과정을 욕하는 많은 분들이 있어서 적습니다. 신라흉노족이 중국한족과 손잡고 한반도에 같이 사는 예맥족 계통의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키고 한반도 이남만 먹어서 우리민족의 영토가 줄었다는 것도 낭설입니다. 어이없는 민족 편가르기는 앞에서 설명한 걸로 됐고 우리민족의 영토가 한반도 이남으로 줄었다는 사실은 일제식민사관에 의해 우리가 잘못 알고있는겁니다.
물론 짱깨를 끌어들인 신라가 못마땅하지만 신라때문에 우리민족의 영토가 줄은 것은 아닙니다. 고구려의 드넓은 만주땅과 요동반도는 그대로 신라에 귀속되었다가 향후 발해에게 빼앗겼다는 것이 정확한 사실입니다. 이는 당서, 요사, 거란지리지 등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요동반도의 주인은 고구려- 신라- 여진- 발해의 순서로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민족이 요동반도와 만주땅을 잃은건 중화사상을 받들고 사대주의를 행한 조선을 세운 이성계때문이지 신라가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켜서 그런게 절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도 이성계가 세운 조선을 싫어하는데 이러한 조선의 사대주의와 일제강점기 때의 식민사관으로 우리민족의 영토가 한반도 이남으로 줄어든겁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죠ㅠ
통일신라라는 말은 잘못된 표현이고 남북국시대가 맞는 표현이라고 요즘 초등생들이 즐겨읽는 한국사편지에 써있죠. 아직도 머리속에 북쪽경계가 청천강인가 대동강 어디쯤으로 기억하고 신라가 민족통일국가를 세운거로 알고 있는 사람 많죠. 발해는 배우긴 했는데 통일신라라는 단어가 주는 기억의 왜곡 능력이 탁월함니다. 대단한 일본놈들....그리고 70년이 다되어가도록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우리도 참...
신라가 삼국통일을 한 것에 대해 말이 많은데... 주몽이란 같은 조상을 둔 고구려와 백제 왕들도 서로가 죽이고 죽이는 전쟁을 했습니다. 백제의 근초고왕은 고구려로 쳐들어가서 고국원왕을 죽였고, 고구려 장수왕은 백제 개로왕을 죽였습니다. 촌수로 따지면 고구려와 백제의 관계가 형제 사이라면 고구려, 백제와 신라의 관계는 12촌 정도입니다. 가까운 형제끼리 치고 받고 싸우는데 법률상 친척도 아닌 사람과 사이가 안 좋다고 욕하는 경우죠. 신라를 욕하고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해야 했다고 말하는 거 보면 완전 코메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