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심지어 동남아에도 괜찮은 인력이나 제작사들은 많이 있습니다. 스토리부터 연출, 레이아웃, 작화 등등 수많은 요소를 단순히 기술력이라는 말로 뭉뚱그려 생각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그 차이는 생각만큼 크지 않은 듯합니다. 한국 제작사가 중국 외주를 하거나, 동남아 제작사가 한국 애니메이션의 메인 프로덕션이 되는 건 이제 흔한 일입니다.

다만 일본은 확실히 여러 가지 면에서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고, 미국은 말할 것도 없죠. 이 차이는 시장의 크기와 정비례한다고 보여집니다. 동남아쪽 출장 가보면 TV에 일본애니가 7, 미국애니가 2, 기타 1 정도 비율로 보이는 느낌인데(대충 주관적), 내수와 아시아쪽에 대한 기본 공략이 가능한 일본이 아무래도 자국 시장 공략조차 버거운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는 비교우위가 있을 수밖에 없죠...(그런데 일본은 오히려 점점 자국의 특정 시장에 매몰되는 느낌입니다. 요새 일본 애니메이션 PD들은 나름 참신한 기획들도 윗선에서 묵살하고 안전하게 가라고 해서 불만이 많다고 합니다. 헤드들이 향후 시장 상황을 좋지 않게 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유통배급을 하는 미국은 뭐... 넘사벽이죠. (다만 이 경우에도 순수하게 "화면을 만드는 기술"에만 한정하면 그 차이는 그렇게까지 크지 않습니다.) 어쨌든 시장이 크면 투자도 커지고, 그러면 제작자들의 경험이나 노하우도 쌓이면서 선순환이 발생합니다. 중국은 이게 - 이론적으로나마 - 가능하기 때문에 전망이 밝다고 생각하고(그런데 중국쪽과 이야기해보면 오히려 자신들은 비관적인 경우가 많음), 한국은 이게 안되기 때문에... 솔직히 앞으로 흥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척 빡빡(?) 하다고 생각됩니다. 한국의 경우 드라마가 강한데,(아까 동남아 이야기를 했는데 동남아에서 한국 드라마는 아직도 강력한 것 같습니다.) 드라마가 많이 만들어지면 인력이나 자금이 몰리고, 그러면 더 좋은 드라마가 나오게 되는 선순환이 일어나니까요. 그러니까 중국 일본 자금도 들어오고... 처음부터 해외 런칭 생각하고 만들고... 

앞에 보니까 코라 이야기가 있는데 한국이 외주제작을 수십년 해왔으니 외주는 잘 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 시장이 없으니 투자가 안되고, 투자가 안되니 자체제작 경험이 적고, 그러니까 한국 애니메이션은 편수도 적고 "전체적인 의미에서의" 퀄리티는 아직 따라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단 하나, 유아용 애니메이션만은 시장이 있다 보니(시장이 있다는 말은 성공한 작품들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많이 만들어지고 있고, 그래서 세계적으로 한국 유아 애니메이션은 강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 뿐이라는 게 문제지만요.

사실 한국 애니메이션 바닥은 지금 사느냐 죽느냐의 갈림길이지, 앞으로 자체제작을 더 많이 하자는 이야기를 할 분위기가 아닙니다. 앞에서 라바를 만든 투바 애니메이션 이야기가 나왔는데, 라바 차기작으로 로봇 애니메이션을 하려고 크게 투자를 했다가 회사가 위험해진 거라는 이야기가 들었습니다. 이와 같이 애니메이션을 제대로 자체제작하는 건 위험한 일입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너무 많지만... 근본적으로 제작사의 국적이 한국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선순환구조(투자-제작-수익-투자)를 가진 시장을 어떻게 만들어내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 영화산업의 PD들은 참 대단한 것 같고(강우석씨를 비롯한 수많은 PD들) 그 성공사례를 배워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국내에도 좋은 애니메이션 PD들이 많습니다만, 투자받고 제작관리하느라 진이 다 빠져서 정작 자체제작에 대한 노하우(기획, 시나리오 등)는 일본에 비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옆나라라서 그렇지 비교대상이 좀 그렇긴 합니다. 전세계 애니메이션 3강은 미국, 일본, 프랑스인데 그 중 프랑스보다 훨씬 앞에 있는 2위니까요... 사실 공평하게(?) 보자면 GDP가 비슷한 국가들 사이에서는 나름 꽤 잘 하고 있는 건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