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멍청이색히가 초대 대통령이 되는 바람에,
친일파를 몽땅 받아들이는 바람에, 이 논리를 내세워
민족주의자 많이 잡아 죽였죠.
그리고 박정희 ㄱㅐ색히는 민주주의열사들을 다 빨갱이로 몰아 잡아 고문했죠.
이승만이 박정희 전두환.. 친일벌레색히들 정권색깔 바뀔때마다 기생충처럼 빌붙어 민족주의자 및
민주주의자들을 축출해내려고 노력했죠.
현재 친일파 잔재들은 나라가 절대 민주주의로 안정화되는거 싫어할 겁니다.
지들 밥그릇 빼깰까봐 겁나는거죠.
반드시 쳐죽여야할 벌레색히들..
저 댓글 단 저색히도 꼭 색출해내서 쳐단하는 그날이 반드시 와야합니다.
김구도 김원봉도 골수 사회주의자였다고! 왜 빨갱이라고 하지! 김원봉 지사 가족이 어떻게 몰살 당했는지 모르는가? 그리고 그 험한 독립운동 할때 이념적 선과 악이 판별 가능 할까요 광복절 날 미친 소리 좀 하지 맙시다 해방 후
독립 운동가 때려 잡을 때 하던 개소리를 21세기에 떠 들어야 합니까?
예전 이슈게에서 김원봉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이런 부분을 가지고 유머라고 하는것이 안타깝지만 진짜 유머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원봉이라는 인물은 특정한 시기에 따라 인터넷 공간에서 평가의 우세도가 달라지는 인물입니다.
오늘같은 광복절의 경우엔 독립운동가로서의 부분이 보다 부각이 되어서 긍정적인 얘기가 많이나오는 반면 현충일과 같은 날이 되면 부정적인 평가들이 많이 나옵니다. 물론 각기 시기에 따라 평가하는 사람이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논란이 많은 한국전쟁이라는 특정한 기간의 활동을 감안하는 경우를 포함해서 옹호와 비판의 우세도가 변함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김원봉이 조선인민공화당이라는 군소정당의 중앙위원회 위원장이었다면, 국가검열상이라는 직책을 맡아도 큰 영향력을 갖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정성장 박사 역시 김원봉이 국가검열상에서 노동상으로, 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직책이 바뀌면서 점점 덜 중요한 자리를 맡게 됐다고 봤습니다. 특히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은 그 이름과는 달리 실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많지 않은 상징적 직책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김원봉이 6·25 전쟁 개전 결정에 참여한 주요 권력자일 것이라는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멉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김원봉이 맡은 직책이 권력의 중심과는 떨어져 있고, 특히 노동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김원봉이 전쟁기 받은 훈장 역시 군사적 공로라기보다는 후방에서 군량미를 생산하는 등의 기여 때문이었다고 평가됩니다.
다만, 이 모든 내용에도 불구하고 김원봉이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했다는 것 자체를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김광운 연구관 역시 김원봉이 북 정권 수립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당연히 기여했던 것으로 봐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김원봉이 인공 초대 내각에서 장관급 자리를 맡았고, 헌법 제정 시에도 위원으로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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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북한정권수립에 기인했고 한국전쟁에서도 특정한 역할을 하긴 했지만 북한정권의 핵심위치에 있지도 않았고(노동당이 아닌 야당), 한국전쟁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이라기보단 보조역할(후방에서 군량미 생산)을 하는데 그쳤다.
보수라고 다 똑같은 보수는 아니지만 조중동 시각에서의 한국의 보수는 일제식민지 이후의 역사적인 평가를 하는데 있어서 국가를 중시여기는 반면 진보는 민족을 중시여깁니다.
한국과 일본,중국과 같은 다른 국가의 역사적 갈등과 비교를 할때는 국가와 민족이 우리와 다른 완전히 개별적 존재이기 때문에 그들과 얽혀있는 역사를 평가를 할때는 배타적으로 보는 것이 정상적입니다.
하지만 남한과 북한을 따질경우는 각기 다른 국가라도 같은 민족의 카테고리입니다. 그것도 니들은 니들끼리 우리는 우리끼리 민족 자체를 나누자는 생각을 가진 것이 아니라 이념에 의해 외세의 간섭에 의해 나눠진 경우고 한국전쟁에서 알수 있듯 서로 하나가 되기 위한 지향성을 가진 같은 민족의 두나라입니다.
이런 경우라면 "역사적인 평가"는 현세의 국가적 틀보다는 민족이 우위에 설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가게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과거 고구려,백제,신라의 그 이후의 역사적 귀결과 상관없이 누군가에게 더 정통성을 찾는것이 아닙니다. 신라가 통일을 했더라도. 단지 최종적인 결과만을 가지고 이야기를 할뿐이죠.
인물평가에 대한 갈등은 같은 민족안에서는 다른 국가에 속했어도 역사적인 화해 또는 재평가가 가능합니다. 북한이 망하느냐 망하지 않느냐 북한에서 어떻게 평가하느냐와 관계없이.
일단 북한이 망하지도 않았는데 황장엽이라는 인물도 잘만 평가를 했습니다. 그것도 당대에. 물론 친일파들이 북한과 싸웠다는 이유만으로 현충원에 묻힐수 있는 논리를 합리화하기 위해 똑같이 황장엽이라는 인물을 내세워 이용한것이라는 건 누구도 속일수 없는 것이지만.
현충원에 묻히기 위해선 국가라는 부분에서의 평가도 중요하지만 민족이라는 부분의 평가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친일행위자는 아무리 한국전쟁에서 공을 세워도 현충원에 묻혀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친일행위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가 다소 사람에 따라 엇갈리는 부분이 있을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명확한 인물에 대해선
영어탈피//
김일성 옹호론이라? 으음... 황장엽이라는 인물이 북에서 무엇을 한 사람인지 최소한의 공부는 하시기 바랍니다. 김일성 유일사상체제,주체사상을 만든 장본인입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북한의 정도전같은 인물입니다.
그가 남한으로 망명해서 하는 얘기는 많은 부분은 의심을 하고 봐야 합니다. 그는 주체사상이 김일성,김정일 세습과정에서 봉건체제로 변질되었다고 비판했지 자신이 만든 주체사상을 비판하지는 않았습니다. 김씨 세습왕조를 비판을 하는것과 북한에서 이루고자 했던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북한이 자기 뜻대로 안되었고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는 전향자가 아니에요. 망명객이지.
트로츠키가 스탈린과의 정치투쟁에서 져서 멕시코로 망명했다고 해서 그가 공산주의자가 아닌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중국 초기공산당의 주요한 인물이었던 장궈타오처럼 정치투쟁에서 마오쩌둥에게 밀려나 공산당에서 국민당으로 전향한 케이스도 아니구요.
순수하게 사상가로서는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보수입장에서 본다면 철저히 ㅃㄱㅇ로 봐야하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는 정치적으로는 이용가치가 크기 때문에 애국자로 칭송해주는 것뿐입니다. 왜냐하면 위에 언급한것처럼 국가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면 자신들의 과오를 씻을수 있는 논리가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북한에서 남한으로 넘어온 사람에 대해선 필요이상으로 대우를 해주는 것입니다.
황장엽이란 인물은 민족적 관점에서 보면 그냥 자신의 정치적 사정에 따라 선택한 것에 불과합니다. 위의 트로츠키나 장궈타오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서 수많은 정치경쟁에서 밀려나 다른나라로 도망가야 했던 망명객들처럼. 이사람들이 무슨 애국자라고. 김원봉도 북한을 선택한건 간단합니다. 그냥 망명한거에요. 그걸 가지고 애국을 했다고 아무도 말하지 않습니다.
물론 무함마드 깐수(정수일)같이 간첩활동을 했던 사람도 해당분야(동서문명교류사)에서 국내에선 독보적인 능력에 전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그런 실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전향을 하면 그래도 인정을 해주는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만 황장엽이라는 사람이 대한민국에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 사람일까요? 단지 북한정권의 허술함이나 내부사정을 알려줄수 있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외에는 없습니다. 그건 그 사람의 의도된 능력이 아닙니다. 자신의 과거의 신분을 이용해서 망명비용을 지불하는 것 뿐이지. 특별히 남한의 민주정치를 옹호하는 발언을 한 적도 없습니다. 과거의 자신이 이룩한것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런말을 할수도 없습니다.
하여튼 조중동식 한국보수의 논리는 간단합니다. 과거가 어떻든 북한과 싸우거나 적대하면 반대하면 그 사람은 애국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웠어도 남한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다면 정치적으로 반대하면 그 인물은 적이 되고 반대로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해도 북한과 싸우고 대한민국을 인정했다면 애국자가 된다입니다. 최종종착지만을 우선해야 본인들의 흑역사를 씻겨낼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해방이후의 대한민국 건국이후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한 보수는 흡수통일을 강하게 원합니다. 그래야 정통성 문제에서 우위에 설수가 있죠. 하지만 진보는 조화로운 통일을 원합니다. 그래야 단순한 물리적인 통일이 아닌 남북 모든 사람들이 수긍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서는 “1945년 8월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에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위해 일제에 항거한 사실이 있는 자”에게 합당한 예우를 하도록 하고 있다. 김 전 관장은 “북한 주체사상의 최고 이론가이자 핵심적 권력층이었던 황장엽은 독립운동은 커녕 그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았음에도 2010년 이명박 정부에서 1등급 훈장인 무궁화장까지 추서하고, 유해는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며 “독립전쟁의 영웅 김원봉은 용납할 수 없는 공산주의자이고, 주체사상가 황장엽은 애국자로 추앙하는 사람들의 정신상태는 건전한가”라고 되묻는다.
- 임정과 사회주의 계열은 이미 3.1운동 이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음. 결정적인 계기가 제1차 국제공산당 자금사건
- 독립운동조직 내에도 이념적 갈등이 존재한다는 걸 인정해야지. 오로지 임정만 인정하는건 옳지 않음. 무슨 1사1노조 원칙마냥 독립운동조직도 한개조직만 인정해야 하는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광복이후 대한민국 정부에 있어 임정의 주축인물들의 대부분들이 빠지거나 들어갔어도 오래 자리를 유지하지 못함. 임정의 정통성 이야기를 할꺼면 해방이후부터 건국이후까지 역사를 생각해보도록. 정통성만 쏙빼먹고 실질적으로는 친일인사들이 정권의 주요인사였음.
- 공산주의내에도 여러파벌에 여러조직이 있고 각기 성격이 다름. 김원봉은 사회혼란과 국가전복을 꾀한 남로당계열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운형계열에 속했던 인물입니다. 그와 함께 좌우합작운동도 벌였고 나중에는 김구,김규식과 함께 남북협상을 위해 북으로 갈때 김원봉은 이들과 함께 북으로 따라갔다가 거기에 남은것입니다. 좌익계열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면서 생명의 위협을 느낄정도였기 때문에.
- 참고로 김원봉은 1944년부터 임시정부에서 군무부장을 담당했습니다. 아래는 1945년 12월 임정요인들이 귀국할때의 기념사진. 여기서 김원봉의 모습을 찾아볼수 잇습니다. 뒷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생각이 다른 건 넘어갈 수 있지만, 찐따 같은 것들이 평가 한답시고 과거의 위인들을 우습게 보는 건 정말 뭐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네요.
지금 당장 골목길에서 고딩들 몇명만 모여 있어도 슬금슬금 다른 데로 피해다닐 것 같은 피조리들이 이미 저 당시에 일본놈들 대갈통을 박살 내고 다니셨던 위인들한테 뭐라 ㅆl부리는 거야? 당장 앞에만 서도 오줌 질질 쌀 것들이 진짜 같잖아서..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