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 이어
그럼 박정희가 합격한 진짜 날짜는 언제인가...
위 기사는
강덕7년 1940년 1월 4일자 치안부대신 명의의
육군군관학교 제2기 예과생도 채용고시 및 합격자 공고
이것에 따르면
기혼자인 데다가 연령 초과로 입학 자격이 문제되었으나 혈서쓰고
다시 도전하여 결국 1939년 10월 만주 무단장시(牡丹江市)에 소재한
제6군관구 사령부에서 4년제 만주국 초급장교 양성기관인
육군군관학교(신경군관학교) 제2기생 선발 입학시험을 치르고 1940년 1월에 15등으로 합격했다.
그리고 위에 것에 따르면
박정희란 이름을 유지하고 있으니
이상한 이름을 거론하면 아니다란
반론에도 충분히 답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맞다. 박정희..그대로 쓰고 합격했다.
징모과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존재했다.
이전에 Noname이 올린 글에 대한 반박을 그대로 올린다.
일단 무엇때문에 옛날 신문 다 뒤졌는지 모르겠지만, 짐작가는 바는 있으나 이 글로는 모르기 때문에 넘어갑니다.
하지만 일단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걸 지적해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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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만주사변이래 육군의 업무가 비상히 광범다기복잡하게 되여 군무국으로부터 병무, 징모, 방위, 마정의
사과를 분리하고 또 군사과를 이분하여 군무과를 신설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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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7월 26일 동아일보 기사를 인용하면서
징모과라는 부서가 1936년 7월 26일에 처음 만들어 진 것이라고 하는데...
기사 내용을 다시 한번 보시죠
군무국 산하에 [병무, 징모, 방위, 마정] 이 4개 부서가 있는데 만주사변이후로 조직 개편을 하면서
군무국 산하 위에 언급한 4개 부서와 군사과를 나누어서
군무국 병무,징모, 방위, 마정 + 군사과 ---> 군무과를 신설 한다는 내용입니다.
징모라는 부서가 1936년 7월 26일에 처음 생긴 것이 아니라 만주사변 이전 부터 존재했던 부서였고
만주사변이후로 다른 부서와 합쳐서 확대개편 되었다가 정확한
해석, 국어를 해석이라고 해야 되는게 안타깝지만, 정확한 뜻입니다.
1936년 7월 26일 기사에 징모과는 처음 개설됩니다---->기사대로라면 틀렸습니다. 징모라는 조직은 이전부터 존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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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친일파냐 아니냐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들에 대해서 왈가 왈부 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채용공고 들고와서 합격공고라고 하는 웃기는 짓은 그만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