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의 혈서를 접수했다는 만주국 치안부 군정사 징모과의 실체 여부다. 치안부가 강덕 4년 7월에 탄생하면서 발표된 분과규정에는 징모과라는 부서는 없었다. 征募課라는 부서가 1939년 12월에 잠깐 존재했다가 사라진 적은 있어도 徵募課라는 부서는 없었던 것이다. 혹자는 征이나 徵이나 같은 글자가 아니냐고 하는 모양인데, 애초에 존립시기가 다른 문제이므로 이체자 논쟁으로 쓸 데 없이 힘을 빼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역시나 마찬가지로 징모과의 실체여부가 없다...라고 주장은 하지만 그것에 관한 근거는 찾아볼수가 없다
진명행이 직접적으로 근거를 가지고 주장한 부분은 아래 덧붙인 내용이 전부다
여기에 한가지를 덧붙이자면...
만주국 치안부 군정사 징모과가 군관학교지원자들의 민원이나 지원서를 접수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부서냐 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직장에 다녀본 분이라면 잘 알겠지만, 소관도 아닌 부서에서 민원이나 서류를 접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설령 접수했다치더라도 그런 서류는 해당부서에 "이첩" 하는 것이 통상적 절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한도 없는 부서의 담당직원이 접수서류를 언론사에 공개한다는 것은 당시나 지금이나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다음의 만주국 정부공보를 보자. 강덕7년(1940년) 7월 27일에 발표된 3기 육군군관학교 예과생도모집 공고이다. 보다시피, 지원자들은 지원서 양식이나 숙지사항은 가장 가까운 군관구 사령부, 또는 치안부 훈련과, 육군군관학교, 지방관공서에 문의하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1938년에는 군형과(軍衡課)에서 원서를 접수했고 1940년에는 훈련과(訓練課)에서 전형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군형과(軍衡課)와 훈련과(訓練課)는 모두 치안부內 참모사(參謨司) 소속부서이다. 만주신문에서는 치안부 군정사 소속 징모과에서 원서를 접수했다고 하는데, 육군군관학교 편제, 운영 담당은 군정사 소관이 아니라 참모사 소관이다.
그런 고로, 이 신문 기사는 허위에 가까운 창작이다.
--- 자 드디어 근거라고 할만한게 나왔다 아마 많이들 본 사진일거다
일베애들이 주장하는 '당시의 원서접수는 징모과 소관이 아니었다'라는 그 사진이다
근데 사진에서 이상한 점을 못찾겠나?
'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을 받들어 읽은 소생은 일반적인 조건에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라는 혈서의 내용이 있다
근데 저 사진에서 우측 네모칸을 보도록 하라
만계...라고 적혀있다.
이 네번째의 근거가 쓰이려면 당시 만계와 일계의 모집부서자체가 같아야한다는 전제가 되어야한다
결국 근거라고 제시한 것은 사진한장이고 나머진 사실인지 확인이 불가능한 글들뿐이다.
물론 진명행은 저 위에 '만계모집요강'이라고 적어놨다 거의 모든 선동자료들이 그렇듯이 '진실은 작게 감추어야'
선동되는 사람들은 오해하고 달려드니까
마치 39년 합격자 명단이 이미 발표되었으므로 박정희는 혈서를 쓸 이유가 없다...란 주장을 펴면서
'박정희 이름이 빠져있는 합격자 명단 사진을 내걸어서 박정희가 합격했기 때문에 쓸 이유가 없다'란
오해로 선동되도록 하는 기법을 쓰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