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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3-23 23:40
스마트아쳐님 혈서주장에 대한 반박
 글쓴이 : 기억의습작
조회 : 1,947  


<민족문제연구소가 증거로 제시한 만주신문 기사 사본 / 이 신문은 박정희가 1939년 3월 29일에 혈서를 썼다고 주장>
 
 

그러나 결정적으로 날짜가 맞지 않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박정희 대통령이 1939년 3월 29일에 만주군관학교 입교를 위해 혈서를 썼다고 주장하였으나 만주군관학교는 1939년 2월 24일에 이미 합격자를 발표한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습니다. 이미 합격자를 발표했는데 합격시켜 달라고 혈서를 썼다? 거대한 거짓말의 단초가 드러납니다. 더군다나 박정희 대통령이 간도조선인특설부대원으로 조선인들을 학살했다던 1939년 대사하 전투 당시에 박정희 대통령은 조선의 문경소학교에서 교사로 재직중이었습니다. 이는 당시 문경소학교 가을 운동회에 참석했다는 내용이 실린 동창회지와 1940년에야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당시 교육당국의 서류가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반론>
 
일단 글쓴 사람 주장은 이미 합격자발표가 난 이후에 합격시켜달라고 혈서를 썼으니 거짓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을거야 합격자 발표가 났으면 과연 혈서를 쓰지 못할까?
 

혈서(血書) 군관지원, 반도의 젊은 훈도(訓導)로부터
29일 치안부(治安部) 군정사(軍政司) 징모과(徵募課)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訓導) 박정희군(23)의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합격 증명서와 함께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고 피로 쓴 반지(半紙)가 봉입(封入)된 등기로 송부되어 관계자(係員)를 깊이 감격시켰다. 동봉된 편지에는
(전략) 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을 받들어 읽은 소생은 일반적인 조건에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심히 분수에 넘치고 송구하지만 무리가 있더라도 아무쪼록 국군(만주국군-편집자 주)에 채용시켜 주실 수 없겠습니까. (중략)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써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입니다. (중략)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일본 : 편집자 주)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후략)
라고 펜으로 쓴 달필로 보이는 동군(同君)의 군관지원 편지는 이것으로 두 번째이지만 군관이 되기에는 군적에 있는 자로 한정되어 있고 군관학교에 들어가기에는 자격 연령 16세 이상 19세이기 때문에 23세로는 나이가 너무 많아 동군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중히 사절하게 되었다.(<만주신문> 1939.3.31. 7면)
 

이상이 만주일보에 실린 혈서내용 전문

 
먼저 '동군(同君)의 군관지원 편지는 이것으로 두 번째이지만 군관이 되기에는 군적에 있는 자로 한정되어 있고 군관학교에 들어가기에는 자격 연령 16세 이상 19세이기 때문에 23세로는 나이가 너무 많아 동군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중히 사절하게 되었다.'
 

즉 박정희는 이번에 편지를 쓴게 처음이 아니었다는 것
 

'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을 받들어 읽은 소생은 일반적인 조건에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즉 박정희는 이미 조건에 부적합했다 즉 탈락이었단 말이지
 
탈락이라서 편지를 보낼 필요가 없었다(합격자발표가 났기 때문에 보낼필요가 없었다)가 아니라 탈락했기 때문에 보낸거임
 
설마 합격자명단에 박정희란 이름이 보이기라도 하는거임?
 
박정희가 편지를 보낼 필요가 없는 경우는 박정희가 이미 합격했을 경우뿐이 없을텐데?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 지만원한테 낚인거임
 
'합격자 발표가 났다'일 뿐이지 '박정희가 합격했다'는 아니거든
 
박정희의 합격및 입학은 1940년이거든 즉 1939년의 합격자발표는
박정희가 편지를 쓰는데 아~~~무런 상관이 없는 헛근거임
 
즉 위에 글을 보더라도 박정희가 원래 원한건 군관학교가 아니라 군관지원이었음
 
군관지원 합격 요건이 충족하지 못한거임
 
그러니 어쩔수 없이 나중에 군관학교에 들어간거임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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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 13-03-23 23:47
   
습작님.. 태클은 아니고 만주신문입니다

http://rnavi.ndl.go.jp/research_guide/entry/theme-asia-49.php
1949年以前に旧満州で発行された日本語新聞

일본 국회도서관 홈페이지 입니다
     
기억의습작 13-03-23 23:48
   
저 당시에는 만주일보로 불렸습니다
그게 나중에 만주신문으로 통합되는 과정을 거친거죠
스마트아쳐 13-03-23 23:50
   
     
기억의습작 13-03-23 23:53
   
자료만 퍼오시지말고 님이 주장하는 내용을 간추려보세요
일베자료 퍼와서 뭐하시는건지 일단 님이 올린 그전 자료는 제가 올린자료로 논파된거 맞습니까???
          
스마트아쳐 13-03-23 23:55
   
박정희가 혈서를 썼다는 1938년 9월 무렵 만주 봉천의 중앙육군훈련처의 군관후보생 모집공고를 보면 치안부 군형과(軍衡課)에서 채용을 공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제출한 신문기사의 진위가 또 한번 의심된다 할 수 있겠다. 징모과라는 부서는 있지도 않은 유령부서이며, 징병제를 실시할 무렵에는 정모과(征募課)라는 부서가 존재했었다.
치안부가 강덕 4년 7월에 탄생하면서 발표된 분과규정에는 징모과라는 부서는 없었다.정모과 征募課라는 부서가 1939년 12월에 잠깐 존재했다가 사라진 적은 있어도 징모과徵募課라는 부서는 없었던 것이다. 혹자는 征이나 徵이나 같은 글자가 아니냐고 하는 모양인데, 애초에 존립시기가 다른 문제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1938년에는 군형과(軍衡課)에서 원서를 접수했고 1940년에는 훈련과(訓練課)에서 전형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군형과(軍衡課)와 훈련과(訓練課)는 모두 치안부內 참모사(參謨司) 소속부서이다. 만주신문에서는 치안부 군정사 소속 징모과에서 원서를 접수했다고 하는데, 육군군관학교 편제, 운영 담당은 군정사 소관이 아니라 참모사 소관이다.

그런 고로, 이 신문 기사는 허위에 가까운 창작이다.
②호적등본은 구비서류가 아니었다.

본적지 경찰서장이 확인한 신분증명서로 대체하도록 되어 있다.
③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을 받들어 읽은 소생은
 일계 군관모집요강』이라는 것은 그 당시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계 군관모집요강은 무려 9개월 뒤인 1939년 12월에나 나왔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혈서를 보냈다는 3월 이전에는 일계 학생은 뽑지도 않았고 만계 학생들만 선발했다. 바로 이런 점이 이 신문기사가 소설을 썼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만주 신경군관학교의 일계(日系) 지원자 모집공고는 陸滿秘 공문 제1019호 (昭和 14年 11월 28일자)에 최초로 기안된 사실이 있다. 昭和 14年이면 1939년 11월 28일자였다. 그러므로 39년 3월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39년 12월로 날아가지 않는 이상 일계모집요강을 신문기사에 나오는 박정희가 받아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계" 모집공고는 "일계"와는 구분하여 고시되었다. "일계"는 육군성 대신의 추천을 받은 자들에 대한 무시험 전형이어서 박정희가 받들어 읽을 필요조차도 없다.
               
기억의습작 13-03-23 23:57
   
하아 이 내용도 다 논파된 자료입니다
제발 논파된 자료 들고 오지좀 마세요
                    
스마트아쳐 13-03-23 23:59
   
반박문 올리세요 논파된 자료 보고싶네요 존재하지도 않던 징모과에대해서 반박하세요
                         
기억의습작 13-03-24 00:03
   
징모과에 대한 반박문 올려드리죠
올려드리고 나서 님의 의견을 말하보세요 제발
스마트아쳐 13-03-23 23:57
   
②혈서 작성
나와 박 선생은 숙직실에서 밤새 고민했다. 우리가 연구한 것은 ‘어떻게 하면 만주군관학교 사람들이 환영할 수밖에 없는 행동을 취할 것인가’였다.
 
  내가 문득 생각이 나서 “박 선생,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쓰면 어떨까”라고 했다. 그는 즉각 찬동했다. 즉시 행동에 옮기는 것이었다. 바로 옆에 있던 학생 시험 용지를 펴더니 면도칼을 새끼손가락에 갖다 대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설마 했는데 손가락을 찔러 피를 내는 것이었다. 박 선생은 핏방울로 시험지에다 ‘盡忠報國 滅私奉公(진충보국 멸사봉공)’이라고 썼다.

 

그는 이것을 접어서 만주로 보냈다. 그때 편지가 만주까지 도착하는 데는 1주일쯤 걸릴 때였다. 한 보름이 지났을까, 누군가가 만주에서 발행되는 신문에 박 선생 이야기가 실렸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 혈서가 신문에 보도되었는지 알 수 없다. 그때 만주에 가 있던 대구사범 교련주임 아리카와 대좌가 도와줘서 그 혈서건이 신문에 났는지, 아니면 만주군관학교에서 신문에 자료를 제공했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목적은 달성된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 뒤 아리카와가 보낸 편지가 박 선생 앞으로 도착했다.
    박 선생은 “아리카와 대좌가 그렇게 군인이 되고 싶으면 자기에게 한번 다녀가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 며칠 뒤 박 선생은 만주에 다녀온 것으로 알고 있다. 아리카와를 만난 모양이었다. 그는 옆구리에 《동양사》 등 몇 권의 책들을 들고 왔는데 “한번 시험을 쳐보라고 했으니 해볼 수밖에 없지”라고 했다.


내 아들 柳浩文(유호문·전 건설부 산업입지국장)은 1939년에 문경보통학교에 입학했는데 담임선생은 박 선생이었다. 이 해 가을(1939년)에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에 입학 시험을 쳤다.

 

==> 실제 사실 : 혈서가 만주까지 가는데 1주일 걸린다고 하였으니 38년 5월에 만주지역의 어떤 신문에 보도가 되었을 것이다. 만주일보 어디에도 그런 기사는 없다. 또한 만주일일신문에도 나와있지 않다.
1938년 5월에 혈서를 작성했다고 하는데, 1기 입학 시험은 38년 10월에 있었다. 모집요강이 시험보다 5개월이나 앞서 있었다는것이 의문스럽다.
1938년도 1기 가을 시험 응시도 아니고 그 다음 해에 치룰 입학청원 편지를 썼다는 증언은 의아할 따름이다. 1939년도 만주군관학교 입학시험일자는 10월3일로 아직 시험공고도 나지 않은 상태에서 1년 훨씬 전에 입학청원 혈서를 보냈다는 것은 상식선에서는 맞지 않다.
 만약 박정희가 혈서를 썼고, 만주에서 발행된 신문에 보도 되었다면 만주로 가기 전에 남로당에 의해 암살되었을 것이다.
어떻게 박정희가 귀국하자마자 남로당이 VIP 특별대우를 하며 박정희를 추종하였겠는가?
박정희가 아직 만주에 있었을 때도 광복군이 달려와 그를 광복군 중대장으로 영입하지 않았던가?
더구나 만주에서의 박정희의 행적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 등소평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중국 최고 영웅으로 추대하였을 리 있겠는가?
적어도 그런 특이한 사건이 발생했다면 만주국의 선무공작 차원에서 보도자료 배포를 통해 당시 만주 여러 언론에 보도되었을 것이다. 만약 사실이라면 늦어도 1주일 이내에 조선에서 발행하는 신문들도 단 한 줄이라도 언급했을 것이다. 또한 독립운동세력들의 지탄으로 인해 풍문이 돌았을 것이지만 혈서사건은 야사에도 전하지 않는다. 일본으로서도 상징적 사건이었기에 정부차원에서 기록에 남겼을 것이지만 아직까지도 증명되지 않고 있다
     
기억의습작 13-03-24 00:00
   
혈서(血書) 군관지원, 반도의 젊은 훈도(訓導)로부터
 
29일 치안부(治安部) 군정사(軍政司) 징모과(徵募課)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訓導) 박정희군(23)의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합격 증명서와 함께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고 피로 쓴 반지(半紙)가 봉입(封入)된 등기로 송부되어 관계자(係員)를 깊이 감격시켰다. 동봉된 편지에는

(전략) 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을 받들어 읽은 소생은 일반적인 조건에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심히 분수에 넘치고 송구하지만 무리가 있더라도 아무쪼록 국군(만주국군-편집자 주)에 채용시켜 주실 수 없겠습니까. (중략)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써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입니다. (중략)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일본 : 편집자 주)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후략)
 
라고 펜으로 쓴 달필로 보이는 동군(同君)의 군관지원 편지는 이것으로 두 번째이지만 군관이 되기에는 군적에 있는 자로 한정되어 있고 군관학교에 들어가기에는 자격 연령 16세 이상 19세이기 때문에 23세로는 나이가 너무 많아 동군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중히 사절하게 되었다.(<만주신문> 1939.3.31. 7면)

자료를 위에 올려놨는데 엉뚱한 자료만 퍼오시는군요 이해를 못하겠네요
혈서에 관한 자료를 정독하고 이해는 하고 올리는건가요??
아니면 무작정 퍼오기만 하는겁니까?
          
스마트아쳐 13-03-24 00:05
   
그전에 채용공고는 군형과 징병제 이후로는 정모과죠 징모과는 어디에있는거죠?
               
기억의습작 13-03-24 00:07
   
위에 따로 글 올려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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