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인혁당 사건도.. 남파간첩 김영춘이 주도했다 라고 했는데..그너마가 북파공작원인게 드러남
1차 인혁당 발표땐 어느정도 증거가 나온겁니다.
주도자===> 남파간첩 김영춘이고..
김영춘이 용공분자들 포섭해서 북한에 가서 보고했다... 등등 간첩사건이 터진건데..
이것도 알고보니 김영춘이 정부기관에서 파견한 북파공작원이었다
사법살인이 자행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아예 실체도 없는거고.
또한
남파간첩 아닌 북파간첩
김상한이 간첩은 간첩인데 김일성의 지령을 받아 북에서 내려온 남파간첩이 아니라, 군 첩보계통에서 북으로 잠입시킨 북파간첩이었던 것이다. 김상한의 월북은 남파간첩이 임무를 마치고 복귀한 것이 아니라, 남쪽의 정보기관이 특수임무를 주어 1962년 7월 북으로 침투시킨 것이다. 더구나 육군첩보부대에서 김상한의 북파공작을 담당했던 팀장 이 아무개는 당시 중앙정보부에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정식으로 국가보안법 피의자로 입건돼 피의자 신문을 받았는데, 1964년 9월1일자로 되어있는 피의자 신문조서에 따르면 자신은 김상한이 인민혁명당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변명했다. 그는 김상한이 자신의 가족이 남쪽에 있기 때문에 자신은 북에 갔다가 꼭 돌아올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북에 가겠다고 나선 것은 “자기 목적 수행을 위하여 월북하려는 위장 구실”이었는데, 자신이 속아 넘어갔다고 말했다. 이아무개의 상급자로 육군첩보부대에서 김상한 북파공작의 담당과장이었던 김아무개도 정보부에서 정식으로 피의자 신문조서를 작성했는데, 김상한같이 혁신운동 하던 사람을 ‘포섭 조정하여 완전히 우리 사람을 만들고 가족들에 대한 생활비 등으로 도와준다면 자진월북자로 가장해 임무수행’할 것이라 생각해 김상한을 채용했다고 진술했다. 중정은 김상한이 남파간첩이 아님이 분명해졌지만, 발표문 등을 수정하지 않은 채, 김상한의 월북을 위장입북으로 몰고 간 것이다. 김상한과 가까운 혁신계 인사들은 김상한이 육군첩보부대가 아니라 미군정보기관에 의해 북파되었다고 주장했다.
김상한이 남파간첩이 아니라 북파간첩이었다는 점은 정보부에는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그런데 몇년 뒤, 인혁당사건 관련자가 진짜 간첩이 되어 나타난 일이 발생했다. 1964년의 발표문에 김배영은 1962년 10월 월북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는 이때 월북한 것이 아니라 형이 있는 일본으로 밀항했다. 1964년 8월 인혁당사건이 발표되고 일본 경시청에서 김배영을 수배하자 오갈 데가 없어진 그는 1964년 11월 총련계를 통해 북으로 갔다가 1967년 10월 공작원으로 남파되었다. 곧 체포된 김배영은 1971년 사형을 당했다. 박정희 정권은 인혁당 재건위가 김배영이 북에서 가져온 공작금으로 조직된 것처럼 몰고 갔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17673.html
재심취지문...
피고인들은 법정에서 공소사실을 인정한바 없음에도 공판조서에는 모두 시인한것으로 변조되었고, 피고인들에 대한 피의자 신문조서는 그 수사장소, 수사일시가 모두 다를뿐 아니라 그 내용역시 피고인들의 진술과 달리 기재되어 변조 되었으며, 수사과정에서 수사관들이 피고인들에 대하여 고문등 가혹행위를 하는등으로 증거를 조작하였다.-
심지어 최후진술까지 전부 위조.
일제시대 보다 솔직히 더 막나갔습니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뉴라이트 추종하시는 보수 사칭 수꼴분들 참 챙피한줄 아세요.
진정한 보수는 이런거 쉴드 안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