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 북한과 중국 국경 주변에서는 북한과 한국 간에 치열한 첩보전을 벌어지고 있었다. 한국은 국정원과 정보사령부 요원들이 활약하고 있었다.
국정원 요원들도 북한 핵심세력을 탈북시키거나 평양의 고급 정보들을 입수할 수 있었다고 한다. .
이 같은 일이 계속 벌어지자 발끈한 김정일은 1999년 4월 연평해전을 일으키는 한편, 중국 정부에 강력하게 항의했다. 보위부의 반탐(대간첩 작전) 요원들을 중국으로 보내 한국 요원들을 제거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중국은 대북정보망의 핵심 거점을이던 선양의 K 항공 지점(당시 부지점장이 국정원 요원이었다) 등을 급습하였다.
중국 공안당국은 한국 요원들에게 “그동안의 활동 내역을 털어놓으면 보내주겠다”고 제안했고, 한국 정보당국은 요원들에게 자백하도록 지시했다.
결국 요원들은 모두 무사히 귀국했다. 이때 대북 정보망은 와해 직전까지 갔다.
대북정보력 와해시켰던 1999년 국정원 대학살
이 같은 일이 벌어지고 난 후 국정원 내부에서는 ‘중국이 어떻게 국정원의 활동을 그렇게 샅샅이 알고 있었을까’하는 의문이 제기됐다. 일부 요원들은 누가 배후에 있는지 짐작했다. 하지만 결국 아무도 그 ‘배후’를 말하지는 못했다. 그해 초부터 ‘국정원 대학살’로 불리는 숙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간부 125명을 포함, 모두 581명의 대공전문요원들을 숙청했다.
당시 해직된 사람의 송영인씨는 “숙청당한 해직자들 자리에는 특채로 뽑은 ‘특정지역 인맥’들이 자리 잡았다”고 설명한다.
또한 김기삼 씨는 “이때부터 사무실 내에서 서로 형님, 동생하고 부르며, 위계질서까지 무너졌다”고 말하였다.
이들은 또한 대북정보라인이 점점 이상해진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한편 다른 쪽에서는 ‘노벨상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블루 카펫 프로젝트’로 알려진 이 ‘로비 공작’에는 당시 청와대와 국정원 핵심인사들이 연루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미국 뉴욕의 한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김기삼 씨는 2005년 전화통화에서 이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했다(이때 그가 지목한 몇몇 인사는 결국 비리혐의로 구속됐다). ‘블루카펫 프로젝트’에 대한 그의 이러한 주장은 2010년 ‘김대중과 대한민국을 말한다’는 책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