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당시의 정치상황
당시 전두환은 영향력있는 야당 정치인 567명의 정치활동을 금지시키는(-_-;)
법을 제정해서 야권을 초토화시키고 (당시 국회의원 수가 276명이었습니다-_-;)
강력한 지지기반을 갖고있던 김영삼, 김대중을 잡아가두죠.
그리고 기존 야당을 해체(역시 전땡크-_-;;;;)시킵니다.
그리고 안기부가 직접 나서서 창당부터 인선, 공천까지 관여하며
다수의 군소정당을 새로운 야권으로 세우고 조종;합니다.
마치 북한에서 노동당 외에 이름만 있는 정부에서만들어준 야당이 있던것처럼말이죠.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이미 전두환이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야권이라 할 만한 야권도 없는 상황이니
지지할 당과 인물이 없던거죠.
생각해보세요. 기존 정치가들은 다 사라지고
어디서 듣고보도못한 놈들이 야당후보라고 나와서
여당이랑 비슷한 소리나 하고 있으니 저런 야당에 표 주겠습니까?
설사 제대로된 후보가 있어도 권력을 등에업은 민정당의 자금력, 정치력, 거기에 언론까지 가세해서
게임자체가 안되기때문에 사실상 선거에서 타 정당이 당선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언론통폐합을 통해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을 싸그리 없애고
문화공보부 주관의 보도관제를 통해서 언론을 조종했습니다.
정부가 모든 언론을 통제했고,
잡혀갈게 두려워서라도 그 일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없었으니
직접 광주민주화운동을 경험한 사람이 아닌 한 전두환 집권기인 81년, 85년 총선에서
민정당 지지율이 높은건 당연한 일입니다.
실제로 당시 전라도 주민이라고 해도 광주항쟁 사실을 아는 사람이
의외로 많이 없었다고 하죠.
당시 광주과 완전히 고립되었고 신군부의 언론통제가 얼마나 철저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87년 민주화 이후 실시된 총선에서는 곧바로 여당 지지율이 엄청나게 떨어지고
제1 야당 지지율이 엄청나게 올라간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그리고 당시 3저호황으로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성장기였기때문에
경제상황이 좋아지자 지지율이 높아진 이유도 있구요.
일단 이것만 고려해도 대부분 설명이 됩니다.
2. 아무리 그래도 81년 전라남도 53.8%, 전라북도 62%나 되는 지지율이 나왔을까?
일단 위의 숫자부터가 문제있습니다.
53.8%, 62%라는 지지율은 무소속을 제외한 수치입니다.
앞서 밝힌대로 당시 야권은 군소정당이고 인물도 없어서 지지가 난립했습니다.
거기다 정부에서 만들어준 당이라 사실상 무늬만 야당이지 정부의 어용세력이었죠.
무소속 후보를 포함해서 정리한 선관위자료를 다시 살펴보면
과반수는 커녕 30% 겨우 넘네요.
누군가의 주장과는 뭔가 많이 다르죠?
3. 그렇다면 헌법개정안 지지율은 왜 90%가 나왔느냐?
제 5차 국민투표는 선거를 위한 투표가 아니라 헌법개정에 대한 투표입니다.
대통령 간선제에 관한 내용 및 유신헌법을 조금이나마 민주적으로 개정하는내용을 포함한 개정안이었죠.
헌법개정과 선거는 전혀 다른 성격의 투표입니다.
헌법개정은 찬/반 투표이며,
대부분의 일반 국민들은 헌법내용을 잘 알지도 못하므로 굳이 반대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극소수의 반대 외에는 대부분 찬성하게 됩니다.
더군다나 당시 언론통제로 헌법개정의 부당성을 사람들이 알지도 못했거니와,
국민투표에 대해선 누구든지 그에 대한 찬성이나 반대에 대한 의견을 연설하거나 현수막 등을 통해 알릴 수 없습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정부 단위에서 국민 투표에 대한 지도, 계몽의 이름으로 투표 안의 주요 내용을 국민에게 알리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엄밀히 따져보자면, 반대운동은 법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찬성운동은 허용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당시의 선거관리위원회는 신문이나 방송, 국민투표공보, 유명인사 등을 통해 국민투표 안의 제안 이유 등 사실상 찬성을 유도하는 내용의 지도, 계몽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조금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6차 국민투표를 제외하고 5차까지의 모든 국민투표들은 행정조직의 일사 분란한 동원 속에 높은 투표율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집권세력의 정당화를 위한 5차 국민투표는 가장 일사 분란하게 치러진 선거입니다. 10월 초에 국민투표 안이 공고되고, 10월 15일에 투표일이 게시되었는데 22일에 이 정도로 높은 성과를 보일 수 있었다니, 오늘날의 관점으론 상상이 어렵습니다. 이는 위의 국민투표의 특징에서 잘 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국민투표를 위해, 행정조직의 일사 분란한 광고와, 계몽회 개최 등 많은 노력이 들어갔습니다. 들리는 것은 찬성을 종용하는 좋은 이야기밖에 없고, 반대의 목소리는 차단하기 때문에 찬성률 또한 비상식적으로 높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출처 http://nec1963.tistory.com/1289)
이같은 사실에 비추어볼때 당시 국민투표는 투표율과 찬성율 측면에서 도저히
낮을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죠.
따라서 80년 국민투표, 81년 총선 85년 총선결과를 가지고
광주민주화운동이 전두환반대 운동이 아니라고 주장하는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당시 광주와 전라도 과반수가 민정당을 지지했다는 주장은 사실이아니고,
저 상황에서 저만큼밖에 지지하지 않은것만해도 기적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