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프레이저 보고서> 요약
캐네디 집권후 가난한 나라가 공산화 되는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가난한 나라의 경제 부흥을 돕는 것으로 정책 방향을 정했다.
한국에서 반미 민족주의가 일어남을 보고받고 한국을 돕되 미국이
돕는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도와야 한다고 결정하게 된다.
장면도 마침 경제개발 5개.년 개획을 세우게 된 것을 미국 정부가 알고
안심하게 된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박정희 쿠데타가 일어난다
미국 정부에서 만주군 장교, 공산주의자 경력을 알게 되었다.
박정희 정부가 미국의 도움을 계속 필요로 한다는 것을 것을 알고 안심하게 된다
일본도 미국의 경제협조 요청에
일본 의존적인 경제 식민지를 만들수 있다는 계산으로 동의하였다
박정희에 뇌물을 주면 일본 경제협력단에 협력할 것이라고 가늠했다.
박정희는 일본으로부터 2조원의 뇌물을 받았다
미국의 해밀턴이 한국의 경제개발계획이 현실성이 없다고 비판하면서
경제개발계획 수정을 제의했다.
그러나 박정희는 매년 7.1%성장과 중공업 위주의 경제개발계획을 바꾸지 않았다.
★★바로 중공업 위주 정책은 미국으로부터 나오지 않았고 박정희가 주장한 것이다
미국의 입장은 경공업 위주로 외국에 수출해서 먹고 살라는 입장이었다
이 부분에서 박정희를 인정할 유일한 쟁점인것 같다
김종필 주가조작으로 1962년 주식시장 파탄
박정희가 화폐 개혁을 단행, 예금 동결하여 경제가 파탄에 빠지는 대형 사고를 쳤다.
중소기업 가동률 45%로 파탄났다.
모든 경제정책을 미국과 공조하지 않으면 미국의 경제원조를 중단하겠다는 말을
듣고 박정희는 미국에 순응하여 모든 경제 관료를 교체한다.
62년 11월에 경제개발 계획을 뜯어 고치고, 미국에서 수출증대계획으로 고치라고
요구하자 미국원조중단 때문에 순응한다.
64년에 미국의 지도를 받는 수출주도형으로 3차 경제개발 수정안이 완성된다
미국은 세금제도 개혁을 요구하여 세수 증대 효과를 가져왔고
한국은행의 환률 정책을 고칠것을 요구,
물가가 올라가고, 수입품 가격은 높아지면 인기가 떨어지기 때문에 박정희는 반대하였다.
환율 안정금1천만 달러 원조, 식량 25만톤 지원하는 당근을 미국이 제시하자
1달러 133원에서 1달러 255원으로 수정하였다
이후 공장이 급속하게 가동되기 시작해서 수출이 급성장하게 되었다
64년 7월 미국에서 '한국 경제 안정화 정책'을 가지고
조엘 번스타인이 한국에 왔다.
판단은 알아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