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는 2002년 6월 30일 서해도발 과정에서 전사 또는 실종된 해군장병 5명에게 일계급 특진과 함께 훈장을 추서했다.[47] 2002년 6월 30일 국군수도병원 합동분향소에는 이한동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과 국회의원, 군 장병 등이 방문했다. 이 총리 등 국무위원 일행 21명은 이날 합동분향소를 방문, 헌화 및 묵념하고 고(故) 윤영하 소령에게 충무무공훈장, 고(故) 조천형 중사등 사망 및 실종 병사 4명에게 화랑무공훈장을 각각 추서했다. 이 총리는 이어 병실을 찾아 부상장병 19명과 일일이 악수하며 "훌륭하게 싸웠소. 용감했소"라고 격려의 말을 건넸다.[48] 2002년 7월 2일 일본에서 귀국한 김대중 대통령은 "만약 북한이 또다시 군사력으로 우리에게 피해를 입히려 한다면 그때는 북한도 더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경고를 했다.[49] 이어 국군수도병원을 방문, 서해교전에서 부상당한 장병들을 위로했다.[50] 교전 발생후 한달뒤인 7월 23일 김대중은 서해교전에서 전사하거나 실종된 장병 5명의 가족 12명을 청와대로 초청했다.
당시 국회회의록에 나온 보상에 관한 내역.
" □서해교전 전사자․전상자 보상내역
<전사자> ○전사자(6명)에게는 개인별 총 4억 4100~4억 4700만 원 일시보상금 지급.
-그 유족에게 매월 68만 6000~82만 1000원의 연금 지급.
※일시보상금 내역:군인사망보상금(3100~3700 만 원), 보훈처장위로금(1000만 원),
국민성금(4억 원)
<전상자> ○전상자(4명)에게는 개인별 총 4200~1억 5400 만 원 일시보상금 지급.
-그 부상자에게 매월 21만 7000~80만 8000원 의 연금 지급.
※일시보상금 내역:장애보상금(500~700만 원), 보훈처장위문금(300만 원),
국민성금(3400~1억 4400 만 원)
덧붙일게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사상식
1980년 신군부세력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북한의 사주를 받아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을 일으킨 주모자로 지목하고, 재야인사 20여 명과 함께 군사재판에 회부한 사건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 중이라는 이유로 재심을 미뤄오다 2003년 10월 서울고등법원에 재심을 청구하였고, 법원은 1980년에 유죄를 선고한 것에 대한 재심을 개시하여 2004년 2월 무죄를 선고하였다.
무식한건 죄가 아닙니다.
배우면 되는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