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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0-28 09:51
[기타] 여러분은 고조선의 정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글쓴이 : 진이
조회 : 1,900  

辰國과 위만조선의 실체


기록에는 조선을 정복하고 세워진 나라가 위만조선과 한사군이라고 적혀있다. 그러나 위만조선과 한사군은 조선전체를 멸하고 세워진 것이아니라 고조선의 일부인 번조선만을 멸하고 세워졌다고 본다.

위만조선과 한사군이 번조선에 세워진 것이라면 번조선이 망할 당시의 영역이 요서지방이었기 때문에 위만조선과 한사군도 분명 요서에 위치를 하여야 할 것이다.

<사기> 조선열전에

"위만이....새(塞)를 나와 패수를 건넜다. 진국의 옛 공지(空地)인 상하장(上下障)에 거주하면서 겨우 변방을 지키며 진번조선에 붙어있었다."

고 기록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 유추해 낼수 있는 것이 진나라의 옛 공지인 상하장에 진번조선이 위치해 있을 거라는 것이다.

또 같은책에

"연(燕)나라가 전성기로부터 진번조선을 침략하여 복속시켰다."

라고 기록이 되어있는데 연나라가 침입한 지역이 창려(난하하류부근)지방을 넘지못하므로 당시의 진번조선은 창려지방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진번조선은 국명이 아니라 지명인데 후에 한(漢)나라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난뒤에 진번조선은 진번군, 또는 낙랑군 조선현이 되었다. 창려지방이 진번조선이 된 것은 추측컨데 당시 그지역이 넓은 의미로는 진조선, 좁게는 번조선의 서쪽경계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이렇게 위만은 간신히 변방을 지키며 조선에 있을 수 있었는데 번조선왕 준(準)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나서는 방심한 틈을 타 군병을 인솔하여 쿠데타를 일으킨다. 이때 번조선의 준왕은 마한(막조선)의 월지국으로 망명해 자칭 진(辰)왕(총통치 국왕)이라 하였다.

위만이 번조선을 멸망시키고 위만조선을 건국하였다면 그영역 또한 번조선과 일치해야 할 것이다.

그 영역이 일치하여야만 위만조선이 조선땅 모두를 통치한 고조선의 후계자가 아니라 그 일부(번조선)만을 통치하였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으며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설치하였다는 한사군도 번조선의 영역이었던 요서에 위치하였다는 논리를 성립시킬 수가 있다.

또한 진조선이 멸망하지 핞고 위만조선의 서쪽지방(요동,만주)에 그대로 존속하고 있으면서 위만조선과 대립하고 있었음을 설명하여야 한다. 위만조선의 수도의 위치에 대해 <한서지리지>에

"왕검성은 낙랑군 패수 동쪽에 있는데 이곳은 이로부터 험독이 되었다."

라고 하였고 당나라의 기록인 <통전>에는

"위만의 왕험성은 패수의 동쪽에 있다."

라고 하여 위만조선의 왕험성이 번조선의 왕험성과 마찬가지로 난하(패수)의 동쪽에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사기>에는 주석자인 서광(徐廣)이 말하길

"창려에는 험독현이 있다."

라고 하였으니 위만의 왕험성도 창려지방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기>에 한나라의 섭하(涉何)가 위만조선에서 도망갈 때 그 경계를 설명한 기록이 있다.

"섭하는 도망가서 경계인 임패수(臨浿水)에 이르렀다."

여기서 임패수는 임패현의 강을 가리키는 것이며 임패현이라 지명은 패수로 인해서 생긴 지명이므로 임패수란 패수의 지류를 지칭하는 것이다. 즉 위만조선의 서쪽경계도 번조선과 마찬가지로 패수(난하)인 것이다.

그렇다면 위만조선의 동쪽, 요동지방을 중심으로 위치해 있는 진조선의 존재는 어떻게 될까?

위만조선이 고조선 전체를 멸하고 세워진 나라가 아니라 다만 고조선의 일부인 번조선을 멸하고 세워졌다면 분명 동쪽에는 진조선이 위치하였을 것이다. 위만이 번조선을 멸하고 나라를 세운후에는 진국(辰國)과의 대립이 보인다. 위만조선에서 정치적 분쟁이 있을때에는 진국으로 망명해 오는 번조선인들도 있었다.

위만조선이 번조선을 멸하고 나서부터 보이게 되는 진국은 과연 어떠한 나라인가?

이 진국에 관하여 학계에서는 많은 혼선을 가져왔다.

어떤 학자는 위만조선에 의해 멸망하여 월지국으로 도망해온 준왕이 진(辰)왕이라고 자처하였으므로 진왕이 세운 나라가 진국일 것이라는 학자도 있고 한반도 남단에 삼한이 세워지기 이전에 그곳을 진국이라 했을 것이라는 학자도 있다.
( 김정배, 「삼한,삼국의 국가기원론」,『한국고대의 국가기원과 형성』,고려대학교 출판부, 1986 )

이렇게 논쟁이 분분한 이유는 진국에 대한 기록이 문헌마다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후한서』「동이전」한전에는

"한에는 삼종이 있는데 .....모두 옛날의 진국이었다." 고 기록되어 있으며

『삼국지』「동이전」한전에는

"진한은 옛날의 진국이었다." 고 기록이 되어있다.

하나는 삼한이 모두 옛날엔 진국이었다고 하고 하나는 진한이 예날의 진국이었다고 한다면 과연 이 기록은 어떻게 해석되어져야만 하겠는가?

전술한 바와 같이 '진'은 '총' '대표'라는 뜻을 지녔다고 하였다. 그것을 한자로 표기하면 진(辰), 진(眞)이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조선의 총통치국을 진조선이라고 하였고 또는 진국(辰國), 진국(眞國)으로 줄여서 부르기도 하였다고 하였다. 이 진은 고유명사이기도 하며 보통명사로도 쓰이기도 하여서 위만에 멸망당하여 월지국(月支國)으로 망명한 준왕(準王)은 스스로 진왕이라고 자처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진국은 한반도 이남의 삼한 전에 존재했었던 나라가 아니라 요동, 만주지역의 고조선 총통치국이었던 진조선 또는 진한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삼국지』에서

"진한은 옛날의 진국이었다." 라고 한 것이다.

또 진국이 전삼한의 한반도 남단으로 이동하기 전에 전삼한을 관할하는 대표국이었기 때문에 『후한서』「동이전」한전에는

"한에는 삼종이 있는데 .....모두 옛날의 진국이었다."

고 기록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진국은 진조선이었으며 위만조선과 대립하고 있었던 진국이라는 나라는 진조선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번조선이 진조선의 후국이었다면 번조선왕 기준이 위만이 반란을 일으켰을때 진조선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바다를 건너 한반도의 마한으로 도망을 간것에 대하여 의문을 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신채호의 『조선사연구』「전후삼한고」에서 논거한 바와 같이 정치상으로만 분립되어 다스려 졌던 고조선이 B.C4세기에 이르러서는 번조선의 기후(箕 言+羽)왕이 왕을 칭하고 나서부터 본격적인 삼조선 분립시대가 도래하였다고 한 표현에서 알 수 있다.

즉 진조선은 B.C4세기부터는 후국을 다스릴 힘을 잃고 쇠잔하여 번조선과 막조선은 진조선의 간접통치에서 벗어나 완전히 독립적인 국가가 되었던 것이며 번조선왕인 기준이 위만에게 정권을 빼았겼을 때 진조선에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B.C4세기에 번조선왕을 쫓아내고 정권을 잡은 기후(箕 言+羽)왕도 또한 12세기경에 번조선땅에 들어온 기자의 후예였었기 때문에 위만조선과 마찬가지로 도둑정권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기자조선이라는 신화는 12세기경에 성립한 것이 아니라 B.C4세기, 정확히 말하자면 B.C 323년경 정권을 잡은 기자의 후예, 기후왕때부터 성립이 된 것이며 이 후손은 정통성을 갖기 위해 선대인 기자부터 왕의 칭호를 사용했던 것처럼 꾸몄다.

그래서 기자조선(?)은 엄밀히 말하면 없었던 것이며 다만 조선인화된 기자의 후예에 의하여 B.C 323년경에나 되어서야 성립이 된 것이다.

『삼국지』에는

"전국시대(戰國時代) 때 연나라가 스스로를 높여 왕이라 칭하자 조선의 후(侯)도 왕을 칭(稱)하였다"

라고 써있는데 우리학계에서는 기후(箕 言+羽)가 B.C 323년에 왕을 칭하였다는 기록을 그대로 믿고 마치 고조선이 그때부터 고대왕국의 기틀을 성립시킨 것처럼 오인을 하고 있다.

실은 기자의 후예인 기후가 번조선왕을 쫓아내고 왕이 되었다는 것을 기록에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중국사학자인 전백찬(剪伯贊)선생은 산동반도에 거주한 동이의 제부락은 원래 모두 은(殷)족에서 갈라져 나왔으며 문헌에 보이는 진국(辰國)은 원래 은족의 옛땅이었고 동이가 모두 진국(辰國)의 영역에 속한다고 하였다.

중국인 사학자 전백찬 선생도 진국이 한반도에 있던 세력이 아니라 동이족의 총통치국으로서의 중심세력이었다는 것을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삼조선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진국에 대한 설명이 불가능 할 수 밖에 없다.

위만조선과 이웃하고 있던 진국에 대해 『사기』「조선전」에서는

"辰國(衆國) 欲上書貝天子 又擁閼不通"

이라는 기사를 적고 있다.

이 말은 진국 혹은 중국(衆國)이 중국의 천자에게 가고자 하나 위만조선이 방해하여 불통하게 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상이한 판본에 따라 진국이 중국(衆國)으로도 표기되어 있는 것을 진국이 중국(衆國-여러나라)가운데 하나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 김정배, 「삼한,삼국의 국가기원론」,『한국고대의 국가기원과 형성』,고려대학교 출판부, 1986 , p253)

이 기록에서처럼 위만조선과 진조선은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고조선의 중심국가 였던 진조선은 멸망하지 않고 존재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또 『삼국지』「동이전」한전에 인용되어 있는 『위략』에는

"조선상(朝鮮相) 역계경(歷谿卿)이 위만조선의 우거왕(右渠王)에게 간하였으나 들어주지 않으므로 동쪽에 있는 진국으로 갔으며 그때 2천여호가 따라갔다"
(朝鮮相歷谿卿以諫 右渠不申 東之辰國 時民隨出居者 二千餘戶)

는 내용의 기사가 실려있다.

이 내용에서도 알수 있듯이 진국이 위만조선의 동쪽, 정확히 말하면 요동지방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으며 번조선유민과 위씨정권과의 불화를 확인 할 수 있다. 그래서 번조선유민이 이 당시의 진조선으로 이주하였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진국이 위만조선의 남쪽에 있었던 나라가 아니라 동쪽에 있었다는 것이다.
진국이 한반도에 있었다면 위만조선이 기존의 통론되로 평양에 있었다고 하여도 '남쪽에 있는 진국'으로 표현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분명히 진국은 위만조선(요서)의 동쪽(요동,만주)에 있었던 진조선을 말하는 것이다.

또 후한서(後漢書)에는 기자조선왕(箕子朝鮮王) 기준(箕準)이 위만(衛滿)에게 나라를 빼앗긴 후 남은 무리 수천인과 같이 바다 길로 한지(韓地)로 이동하여 마한(馬韓)을 공격하여 깨뜨리고 스스로 한왕(韓王)이 되었다고 적혀 있다.

"조선왕 준은 위만에게 패한 후 남은 무리 수천인과 같이 바다 길로 도망하여(한지로 가서) 마한을 공격하여 깨뜨리고 스스로 한왕이 되었다. 준 후는 대가 끊어지고 마한인들이 다시 진왕을 세웠다"
(初朝鮮王準爲衛滿所破乃將其餘衆數千人走入海攻馬韓破之自立爲韓王準後絶滅馬韓人復立爲辰王」後漢書 韓傳 )

이 기록은 알다시피 번조선이 멸망할 당시 한반도에는 원래부터 마한(막조선)도 존재하고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전술한 것처럼 위만이 세운 조선은 조선의 일부인 번조선의 땅인 요서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요동과 만주에 위치한 진조선(진국)과 한반도에 위치한 막조선은 그대로 존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후한서』에는

" 기원전 128년에는 번조선유민의 군장이었던 예군남려(穢君南閭)가 위씨조선에 불만을 품고 28만구를 인솔하여 한(漢)나라에 내속해 오자 한나라는 이곳에 창려군을 설치했다."
(穢君南閭等 畔右渠, 率二十八萬口, 詣遼東內屬以其地爲蒼海郡)-3
*공기밥-1. /新校本史記三家注/新校本史記/世家/卷五十五 留侯世家第二十五
2. /新校本漢書/本紀/卷六 武帝紀第六
3. /新校本後漢書/列傳/卷八十五 東夷列傳第七十五/ 濊

고 기록하고 있다.

『사기』에는

"팽오가 조선을 멸하고 창해군을 설치하였다."고 했다.

그런데 주석하기를

"조선은 番名이다"

라고 하였으니 여기서 조선은 번조선 즉, 당시의 위만조선을 말한 것이다. 즉 창해군은 위만조선땅의 일부지역에 설치되었을 것이다.

『한서』「지리지」에는

"요동군은 27만 2천 5백 37구가 있다"

하였고 주석에 "진나라가 설치하였다. 유주에 속한다."

고 하였는데 남려(南閭)는 진나라때의 요동군, 즉 창려(난하하류부근-당시의요서)지방의 약 28만구를 끌고 내속해 온 것이다. 따라서 창해군은 창려지방에 설치되었던 것이며 수년후에 토착인의 반항으로 폐지가 된다.

여전히 위만조선의 서쪽경계는 난하였다.

주지한 바와 같이 번조선을 뒤를 이은 위만조선도 요서지방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위만조선의 동쪽인 요동과 만주지방에는 진국(진조선)이 위치하고 있었다.

즉 위만조선은 고조선 전체를 침탈한 고조선의 전통을 계승한 나라가 아니라 고조선의 일부지역(요서)를 다스린 변방국가였다는 것이다. 위만조선을 침탈하여 세워졌다는 한사군도 초기에는 위만조선이 위치한 요서지방에 세워졌었다.

그러다가 진조선(진국)이 망하고 뒤를 이어 북부여가 세워지고, 번조선이 망하고 그 유이민들에 의해 요동, 만주, 한반도 등지에 고구려(구려), 옥저, 예맥, 낙랑, 예, 삼한등이 세워지면서 혼란한 틈을 이용하여 요동(구려,옥저,예맥)과 한반도의 일부지역(최씨낙랑국)까지 침입하려고 했었던 것이다.

고구려, 옥저, 예맥, 낙랑, 대방, 삼한등 번조선이 망한시기에 등장하는 소국들은 원래 번조선땅인 요서지방에 있었던 지명,또는 국명이었으며 번조선의 유이민들의 이동과정에서 그 명칭이 요동, 만주, 한반도 등에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침탈하고 나서 그러한 명칭들이 요서지방과 만주, 한반도등에 같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명칭이 낙랑, 대방, 옥저, 변한 등인데 이 명칭들은 요서와 한반도에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이처러 전삼한의 실체를 이해하지 않으면 한국고대사의 중요한 논제를 풀수가 없다고 확신한다.
글출처 : coo2.net 곤지님이 올린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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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고조선은 천자의 제국이었다> 책 내용 맞죠;;
너무 민족주의 같은......??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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