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14-05-31 20:27
[통일] 세종실록 지리지 공험진 원문.
 글쓴이 : 굿잡스
조회 : 4,284  

두만강 이북에 선춘령과 고려경이 표시된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전도.
 
 
 
지리지 / 함길도 / 길주목 / 경원 도호부
 
경원 도호부(慶源都護府)
사(使)가 1인이니, 길주도 우익 병마(吉州道右翼兵馬)를 겸한다.
공주(孔州)로서 혹은 광주(匡州)라고도 칭하는데, 오랫동안 호인(胡人)에게 점거(占據)되었었다. 고려의 대장(大將) 윤관(尹瓘)호인(胡人)을 몰아내고 공험진 방어사(公險鎭防禦使)를 두었다. 본조 태조(太祖) 7년 무인에 덕릉(德陵)안릉(安陵)이 있다고 하여 경원 도호부로 승격시키고, 성(城)을 수축하기 위하여 땅을 파다가 인신(印信) 1개를 얻었는데, 그 새긴 글에 ‘광주 방어지인(匡州防禦之印)’이라고 되어 있었다. 태종(太宗) 9년 기축영락(永樂) 7년.】에 목책(木柵)을 소다로(所多老)의 영기(營基)에 설치하고 부(府)를 옮겼고, 10년 경인에 야인(野人)의 난리로 인하여 경성군(鏡城郡)에 합쳤다가, 17년 정유영락 15년.】경성(鏡城)두롱이현(豆籠耳峴) 이북의 땅을 떼어서 다시 도호부로 삼고, 부가참(富家站)에다 목책(木柵)을 세우고 치소(治所)로 삼았다.
복호봉(伏胡峯)【부의 동쪽에 있는데, 본부 사람들이 진산(鎭山)으로 삼는다. 】대천(大川)은 두만강(豆滿江)【부(府)의 동북쪽에 있다. 그 근원이 백두산(白頭山)에서 나오는데, 동쪽으로 흘러서 동량북(東良北)으로부터 사지(舍知)·오음회(吾音會)·수주(愁州)·동건(童巾)·다온(多溫)·미전(迷錢) 등지를 지나 회질가(會叱家)에 이르고, 남쪽으로 흘러서 소다로(所多老)·동림(東林)·오롱초(吾弄草)·아오지(阿吾知) 등지를 거쳐 공주(孔州)를 지나고, 동쪽으로 23리를 흘러서 사차마도(沙次亇島)에 이르러 갈라져 5리 정도쯤 흘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수빈강(愁濱江)이다.두만강 북쪽에 있다. 그 근원은 백두산 아래에서 나오는데, 북쪽으로 흘러서 소하강(蘇下江)이 되어 공험진(公險鎭)·선춘령(先春嶺)을 지나 거양성(巨陽城)에 이르고, 동쪽으로 1백 20리를 흘러서 수빈강이 되어 아민(阿敏)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사방 경계[四境]는 동쪽으로 바다에 이르기 20리, 서쪽으로 경성(鏡城) 두롱이현(豆籠耳峴)에 이르기 40리, 남쪽으로 연해(連海) 굴포(堀浦)에 이르기 12리, 북쪽으로 공험진에 이르기 7백 리, 동북쪽으로 선춘현(先春峴)에 이르기 7백여 리, 서북쪽으로 오음회(吾音會)의 석성기(石城基)에 이르기 1백 50리이다.
호수가 2백 91호요, 인구가 3천 2백 33명이다. 군정은 익속군(翼屬軍)이 3백 1명, 수성군(守城軍)이 58명이다.
땅이 기름지다. 간전(墾田)이 52삭(朔) 13일(日) 3조(朝) 반조(半朝)【이것이 바로 본부(本府)의 전지(田地)이다. 본래 타량(打量)함이 없으므로, 곧 일경(日耕)으로써 근거(根據)를 삼았다. 】2천 1백 82결이다.【논은 겨우 50결인데, 이것도 경성(鏡城)에서 떼어 내어 내속(來屬)시킨 것이다. 】토의(土宜)는 피·콩·조·메밀이다. 토공(土貢)은 표범가죽·곰가죽·사슴가죽·삵가죽·여우가죽·잘[獺皮]이요, 약재는 녹용·당귀(當歸)·인삼·망초뿌리[秦]·방풍(防風)·택칠(澤漆)·속새[木賊]·삿갓나물[蚤休]·바디나물뿌리[前胡]이요, 토산(土産)은 범의 가죽·연어·문어·상어·방어·대구·황어(黃魚)·송어·굴·미역·곤포(昆布)·다시마이다. 염분(鹽盆)이 15개이다.
읍 목책(邑木柵)【둘레가 7백 38보(步)이다. 】고랑기 목책(高郞岐木柵)이 부의 동북쪽에 있고,【둘레가 1백 66보이다. 】청암 목책(靑巖木柵)이 부의 서쪽에 있고,【둘레가 3백 보(步)이다. 】부리하 목책(夫里下木柵)이 부의 서쪽에 있고,【둘레가 2백 1보(步)이다. 】용성 목책(龍城木柵)이 부의 서쪽에 있다.【둘레가 2백 75보(步)이다. 】동림성(東林城)【동쪽으로 두만강을 끼고 있다. 안에 큰 우물이 있는데, 둘레가 21보(步)나 되며, 그 깊이는 헤아릴 수 없다. 태종 원년 신사에 그 성을 수축하여 경원부(慶源府)의 산성(山城)으로 삼았다. 】아오지 고성(阿吾知古城)동림성(東林城) 남쪽에 있고,【옛 경원부(慶源府) 때에 군사를 주둔시켜 수어(守禦)하던 곳이다. 】공주성(孔州城)아오지성 남쪽 두만강 가에 있다.【옛 경원부(慶源府) 때에는 읍성(邑城)을 삼았었다. 】공주성(孔州城) 남쪽 5리쯤 되는 평야(平野) 가운데에 두 개의 둥근 봉우리가 있는데, 남쪽에 덕릉(德陵)을 모셨고, 북쪽에 안릉(安陵)을 모시었다. 태종 10년 경인에 함흥부(咸興府)로 옮겨 모시었다.
동림성(東林城)에서 북쪽으로 5리쯤 가면 소다로(所多老)의 영기(營基)가 있고, 그 북쪽으로 30리에 회질가탄(會叱家灘)이 있으니, 바로 두만강의 하류이다. 강을 건너 10리 되는 넓은 들 가운데에 큰 성이 있으니, 곧 현성(縣城)이다. 안에 6개의 우물이 있다. 그 북쪽으로 90리 되는 곳의 산상(山上)에 옛 석성(石城)이 있으니, 이름이 ‘어라손참(於羅孫站)’이다. 그 북쪽으로 30리에 허을손참(虛乙孫站)이 있고, 그 북쪽으로 60리에 유선참(留善站)이 있으며, 그 동북쪽으로 70리에 토성기(土城基)가 있으니, 곧 거양성(巨陽城)이다. 안에 돌기둥 둘이 있으니, 예전에 종(鍾)을 달던 곳이다. 종의 높이가 3척, 지름이 4척이 넘었었다. 일찍이 경원(慶源) 사람인 유성(庾誠)이란 자가 그 성(城)에 가서 그 종을 부수어서 말 9마리에 싣고 왔는데, 겨우 10분의 1에 지나지 않았었고, 따라갔던 사람 30여 명이 모두 죽었다. 그 나머지 쇠붙이는 풀숲 가운데 버려져 있었으나, 누가 감히 가져가지 못하고 있다. 그 성은 본래 고려 대장(大將) 윤관(尹瓘)이 쌓은 것이다. 거양에서 서쪽으로 60리를 가면 선춘현(先春峴)이니, 곧 윤관이 비(碑)를 세운 곳이다. 그 비의 4면에 글이 새겨져 있었으나, 호인(胡人)이 그 글자를 깎아 버렸는데, 뒤에 사람들이 그 밑을 팠더니, ‘고려지경(高麗之境)’이라는 4자가 있었다. 선춘현(先春峴)에서 수빈강(愁濱江)을 건너면 옛 성터[城基]가 있고, 소다로(所多老)에서 북쪽으로 30리를 가면 어두하현(於豆下峴)이 있으며, 그 북쪽으로 60리에 동건리(童巾里)가 있고, 그 북쪽으로 3리쯤의 두만강탄(豆滿江灘)을 건너서 북쪽으로 90리를 가면 오동 사오리참(吾童沙吾里站)이 있으며, 그 북쪽으로 60리에 하이두은(河伊豆隱)이 있고, 그 북쪽으로 1백 리에 영가 사오리참(英哥沙吾里站)이 있으며, 그 북쪽으로 소하강(蘇下江) 가에 공험진(公險鎭)이 있으니, 곧 윤관(尹瓘)이 설치한 진(鎭)이다. 남쪽으로 패주(貝州)·탐주(探州)와 인접(隣接)하였고, 북쪽으로 견주(堅州)와 접(接)해 있다. 영가 사오리(英哥沙吾里)에서 서쪽으로 60리를 가면 백두산(白頭山)이 있는데, 산이 대개 3층으로 되었다. 꼭대기에 큰 못이 있으니, 동쪽으로 흘러 두만강(豆滿江)이 되고, 북쪽으로 흘러 소하강(蘇下江)이 되고, 남쪽으로 흘러 압록(鴨綠)이 되고, 서쪽으로 흘러 흑룡강(黑龍江)이 된다. 그 산에 사는 새와 짐승은 모두 흰빛이며, 산허리 이상은 모두 속돌[水泡石]로 되어 있다. 부(府)의 서쪽으로 80리에 오음회현(吾音會峴)이 있고, 25리에 대령(大嶺)이 있으니, 이름이 ‘청산(靑山)’이며, 그 서쪽으로 10리에 큰 산이 있으니, 이름이 ‘다갈산(多曷山)’이다. 부의 남쪽으로 35리에 굴포(堀浦)가 있고, 동쪽으로 5리쯤에 창기(倉基)가 있는데, 속설에 전하기를, “ 고려[前朝]에서 북벌(北伐)을 할 때 조전(漕轉)하여 위수(委輸)5241) 하던 곳이라.” 한다. 부(府)의 남쪽으로 20리 바닷가에 순지(蓴池)웅구참리(雄丘站里)가 있고, 동쪽으로 장포(長浦)가 있으며, 그 동쪽으로 50리에 큰 못이 있는데, 바다와 통한다. 속설에 전하기를, “용(龍)이 있는 곳이라.” 한다. 진주(眞珠)와 명패(明貝)가 난다.
온천(溫泉)이 1이요,【부의 서북쪽 10리 되는 부회환(釜回換)에 있는데, 호인(胡人)이 왕래(往來)하기 때문에 정천(井泉)을 열지 아니한다. 】참(站)이 1이니, 회수(懷綏)이다.【옛 이름은 부거(富居)이다. 예전에는 시원(時原)·웅구(雄丘)·강양(江陽) 등 3참이 있었으나, 호적(胡賊)의 해(害)를 입어 이산(離散)되었다. 태종 10년 경인에 합속(合屬)시켰다. 】봉화가 2곳이니, 남산(南山)【남쪽으로 여배자개(餘背者介)에 응한다. 】·여배자개(餘背者介)이요,【남쪽으로 경성(鏡城) 청암(靑巖)에 응한다. 】해도(海島)가 5이니, 초도(草島)【부의 동쪽에 있다. 예전에 호인(胡人)이 목마(牧馬)하던 곳인데, 속설에 전하기를, “좋은 말[良馬]이 난다.”고 한다. 그 옆에 소초도(小草島)가 있다. 】·적도(赤島)【부의 동쪽에 있는데, 육지와의 거리가 1리이다. 닭[鷄子]을 기른다. 】·난도(卵島)적도(赤島) 남쪽에 있는데, 뭇 새들이 알을 낳아 기른다. 】·후라두도(厚羅豆島)난도(卵島) 동쪽에 있는 데, 육지와의 거리가 30리이다. 역시 뭇 새들이 알을 낳아 기른다. 】·시반두대도(時反豆大島)후라두도(厚羅豆島) 동쪽에 있는데, 육지와의 거리가 1리이고, 그 동쪽으로 3백 40리쯤이 수빈강(愁濱江)이다. 동쪽으로 바다 가운데에 섬들이 있으니, 대개 1백 개나 되며, 그 모양이 바둑[碁]을 벌여 놓은 것 같다. 새와 짐승들이 많으므로, 야인(野人)들이 간혹 사냥을 행한다. 】이다.
【영인본】 5책 697면
【태백산사고본】 59책 155권 10장 B면
 
慶源, 都護府使一人, 兼吉州道右翼兵馬。 古孔州, 或稱匡州, 久爲人所據, 高麗大將尹瓘胡人, 置公險鎭防禦使。 本朝太祖戊寅, 以有德陵安陵, 陞爲慶源都護府, 修城堀地, 得印一顆, 其文曰: “匡州防禦之印。” 太宗九年己丑,永樂七年。】設木柵于所多毛營基, 移府。 十年庚寅, 因野人之亂, 合爲鏡城郡。 十七年丁酉,永樂十五年。】鏡城 豆籠耳峴以北, 復爲都護府。 於富家站建木柵爲治。 伏胡峯【在府東, 府人以爲鎭山。】大川曰豆滿江【在府東北, 源出白頭山, 東流自東良北, 歷舍知吾音會愁州童巾多溫迷錢等處, 至會叱家, 南流, 過所多老東林吾弄草何吾知等處, 歷孔州東流二十三里, 至沙次亇島, 分流五里許入海。】 愁濱江【在豆滿江北, 源出白頭山下, 北流爲蘇下江, 歷公險鎭先春嶺, 至巨陽城, 東流一百二十里, 爲愁濱江, 至阿敏入海。】四境, 東距海二十里, 西距鏡城 豆籠耳峴四十里, 南距連海 堀浦十二里, 北距公險鎭七百里, 東北距先春峴七百餘里, 西北距吾音會石城基一百五十里。 戶二百九十一, 口三千二百三十三。 軍丁, 翼屬軍三百一, 守城軍五十八。 厥土肥, 墾田五十二朔十三日三朝半朝【此是本府之田, 本無打量, 直以日耕爲據。】二千一百八十二結。【水田只五十結, 此割鏡城來屬。】土宜, 稷、菽、粟、蕎麥。 土貢, 豹皮、熊皮、鹿皮、狸皮、狐皮、獺皮。 藥材, 鹿茸、當歸、人蔘、蓁艽、防風、澤漆、木賊、蚤休、前胡。 土産, 虎皮、年魚、文魚、沙魚、魴魚、大口魚、黃魚、松魚、石花、藿、昆布、多絲亇。 鹽盆十五。 邑木柵、【周回七百三十八步。】 高郞歧木柵在府東北,【周回一百六十六步。】 靑巖木柵在府西,【周回三百步。】 夫里下木柵在府西,【周回二百一步。】 龍城木柵在府西。【周回二百七十五步】 東林城【東控豆滿江, 內有大井, 周回二十一步, 其深莫測。 太宗元年辛巳, 修其城爲慶源府山城。】 阿吾知古城, 在東林城南,【古慶源時屯兵守禦處。】 孔州城阿吾知城豆滿江邊,【古慶源府, 時爲邑城。】 孔州城南五里許, 平野中有兩圓峯, 南安德陵, 北安安陵太宗庚寅, 移安于咸興府。 自東林城北去五里許, 有所多老營基, 其北三十里有會叱家灘, 乃豆滿江之下流也。 越江十里大野中, 有大城, 卽縣城, 內有六井。 其北九十里, 山上有古石城, 名曰於羅孫站。 其北三十里有虛乙孫站, 其北六十里有留善站, 其東北七十里有土城基, 卽巨陽城, 內有兩石柱, 古縣鍾處。 鍾高三尺, 圓徑四尺有奇。 嘗有慶源庾誠者至其城, 碎其鍾, 用九馬駄來, 纔十分之一。 從者三十餘人皆死, 其遺鐵寘草芒中, 人不敢收。 城本高麗大將尹瓘所築, 自巨陽西距六十里先春峴, 卽尹瓘立碑處。 其碑四面有書, 爲胡人剝去其字, 後有人堀其根, 有高麗之境四字。 自先春峴愁濱江, 有古城基。 自所多老北去三十里, 有於豆下峴, 其北六十里有童巾里, 其北三里許越豆滿江灘, 北去九十里有吾童沙吾里站, 其北六十里有河伊豆隱, 其北一百里有英哥沙吾里站, 其北蘇下江邊有公險鎭, 卽尹瓘所置鎭。 南隣貝州探州, 北接堅州。 自英哥沙吾里西去六十里, 有白頭山, 山凡三層, 頂有大澤, 東流爲豆滿江, 北流爲蘇下江, 南流爲鴨綠, 西流爲黑龍江。 其山禽獸, 皆白色。 山腰以上, 皆水泡石也。 府西八十里有吾音會峴, 二十五里有大嶺, 名靑山。 其西十里有大山, 名多曷山。 距府南三十五里, 有堀浦。 東五里許, 有倉基, 諺傳前朝北伐時, 轉委輸處。 府南二十里海邊, 有蓴池, 雄丘站里東有長浦。 其東五十里, 有大澤, 通大海, 諺傳有龍處, 産眞珠明貝。 溫泉一,【在府西北十里釜回換, 因胡寇往來, 不開井泉。】站一, 懷綏【古名富居, 古有時原、雄丘、江陽等三站, 被賊離散, 我太宗庚寅合屬。】烽秋二處, 南山【南準余背者介。】 余背者介【南準鏡城 靑巖。】海島五, 草島【在府東, 古胡人牧馬處, 諺傳産良馬, 傍有小草島。】 赤島【在府東, 去陸一里, 鷂子養雛。】卵島【在赤島南, 衆鳥育卵。】 厚羅豆島 【在卵島東, 去陸三十里, 亦衆鳥育卵之處。】 時反豆大島【在厚羅豆島東, 去陸一里。 其東三百四十里許, 愁濱江。 東海中有島, 率一百, 狀如碁布, 多禽獸, 野人或行獵。】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굿잡스 14-05-31 20:30
   
세종 59권, 15년(1433 계축 / 명 선덕(宣德) 8년) 3월 20일(계유) 1번째기사
임금이 여러 신하에게 지금 길주가 예전 길주와 같은가를 아뢸 것을 말하다
 
정사를 보았다. 임금이 여러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고려의 윤관(尹瓘)은 17만 군사를 거느리고 여진(女眞)을 소탕하여 주진(州鎭)을 개척해 두었으므로, 여진이 지금까지 모두 우리 나라의 위엄을 칭찬하니, 그 공이 진실로 적지 아니하다. 관이 주(州)를 설치할 적에 길주(吉州)가 있었는데, 지금 길주가 예전 길주와 같은가. 고황제(高皇帝)가 조선 지도(地圖)를 보고 조서(詔書)하기를, ‘공험진(公險鎭) 이남은 조선의 경계라. ’고 하였으니, 경들이 참고하여 아뢰라.”
 
癸酉/視事。 上謂諸臣曰: “高麗尹瓘將十七萬兵, 掃蕩女眞, 拓置州鎭, 女眞至于今, 皆稱我國之威靈, 其功誠不少矣。 瓘之置州也, 有吉州, 今之吉州, 與古之吉州同歟? 高皇帝覽朝鮮地圖, 詔曰: ‘公險鎭以南, 朝鮮之境。’ 卿等參考以啓。”
굿잡스 14-05-31 20:41
   
원문의 내용이 잘 이해안되시는 분들은 아래 정리글 참조하시길.

공험진에 대해 잠시 위치를 살펴보면
『세종실록』 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의하면, 공험진에는 내·외방어소(內外防禦所)가 있었는데, 내방어소는 경원도호부(慶源都護府) 자리에, 외방어소는 두만강 북쪽 700리에 있는 공험진에 두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그곳까지의 노정은 조선 초기의 경원도호부 동림성(東林城)을 출발해 북쪽 5리쯤에 소다로영터〔所多老營基〕, 그 북쪽 30리에 어두하현(於豆下峴), 그 북쪽 60리에 동건리(童巾里), 그 북쪽 3리쯤에 두만강탄(豆滿江灘), 그 북쪽 90리에 오동사오리참(吾東沙吾里站), 그 북쪽 60리에 하이두은(河伊豆隱), 그 북쪽 100리에 영가사오리참(英哥沙吾里站), 그 북쪽 소하강(蘇下江) 강변에 공험진이 있다고 하였다
 
 
좀더 구체적 내용은 아래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23726&cid=1591&categoryId=1591
 
 
Total 268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268 [통일] 우리 주변국중에서 통일을 원할 나라는 미국 뿐입니… (32) 어흥 07-12 4583
267 [통일] 러시아는 남한주도 통일을 지지하는나라인가요? (8) shadowoftime 07-11 5771
266 [통일] 8천년전 인류 최초의 치아수술 흔적(사진) (7) 굿잡스 07-09 5048
265 [통일] 우리 나라 역사를 거론할 때 (5) 감방친구 07-06 5094
264 [통일] 지도)고구려의 주세력권이 마냥 압록강 이남이라는 … (4) 굿잡스 07-01 8913
263 [통일] “피해자 개인의 배상청구권 유효” (5) 굿잡스 06-26 3428
262 [통일] 지도로 보는 발해(698~926)멸망 후 금나라(1115) 건국 사… (6) 굿잡스 06-23 13183
261 [통일] 세종실록 지리지 공험진 원문. (2) 굿잡스 05-31 4285
260 [통일] 조선의 영토 인식과 경계가 과연 압록,두만강안으로 … (6) 굿잡스 05-31 4968
259 [통일] 조선시대에 영국인이 본 한국 여성 (4) 이리이지 05-26 6151
258 [통일] 한국을 제외한 동아시아의 상대방 폄하가 도를 넘고 … (11) 이리이지 05-17 8136
257 [통일] 2차 고수전쟁 수나라의 300만 대군은 얼척의 과장인가 (17) 굿잡스 05-11 10350
256 [통일] 한 VS 미 국민이 국민을 살리는 나라! 국민이 국민을 … (6) 굿잡스 05-03 3846
255 [통일] 다시 보는 일본의 신대문자.고대 일본에는 문자가 존… (9) 만수사랑 04-22 5132
254 [통일] 우리 한민족이 바로 천마의 후손이죠 (2) 만수사랑 04-22 3656
253 [통일] 당장 대한민국은 보호받을 수 있는가? (13) 굿잡스 04-20 5120
252 [통일] 유독 이 나라에만 매국종자가 많은 이유 (1) 찌짐이 04-08 2538
251 [통일] 동아시아 관계 (3) 만수사랑 04-07 2439
250 [통일] '대마도본시아국지지(對馬島本是我國之地)' … (9) 굿잡스 04-05 5398
249 [통일] [펌]요즘 여성 비하에 대한 글 (10) 만수사랑 03-25 4419
248 [통일] 일본 우익들이 역사의식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 (1) 만수사랑 03-22 3201
247 [통일] 광복군에 의해 끌려가는 친일파들 (2) 만수사랑 03-18 3311
246 [통일] 부정적 과거역사를 미화하는건 쪽국의 몫으로 남겨… (13) vvv2013vvv 03-17 4409
245 [통일] 부여가 韓族의 나라라는 건가요? (4) 감방친구 03-13 5393
244 [통일] 부여는 농업을 기반으로 한 정주국가입니다 (13) 감방친구 03-12 5321
243 [통일] 중국 역사학계에 큰 충격을 준 홍산문화 발견 ( 누가… (1) 도마 03-08 3065
242 [통일] 2050년경 통일대한민국 VS 일 경제활동 인구수 (3) 굿잡스 03-07 9930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