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방면 유서 깊은 암자에서 겨울을 두달 지내든 어느날.
이지역 기상관측 최고의 적설량을 기록한 해였고 추위를 덜 타는 나 조차
거동할 엄두를 내지 못했었죠.
하지만 매일 새벽 세시반이면 법당을 돌며 쌓인눈 다 녹여버릴듯 주변을 밟고 염불하시다가
네시 부터 법당에서 아침 공양 줄때 까지 목탁 치시는 독한 기도 스님이 새로 부임했습니다.
늙은 공양주 보살은 이렇게 추운 날은 작은 암자는 예불을 건너 뛴다고 불만을 토로하며
예불 전에 성수를 올려야하는데 추워서 못하겠다며 이걸 저한테 부탁하는겁니다.
그리하여 성수 올리고 의리 없이 법당을 쏙 빠져 나가려했는데 스님 염불 소리에
매료되어 시베리아 냉풍이 바닥에서 올라오는 구식 법당에 갇치고 말았죠.
이 스님과 친해질쯤 이렇게 훌륭한 염불은 들어본적이 없다고 말했더니 자기는 별거 아니라며
20여분 거리의 산 아래 본사에 내일 새벽에 가보라는겁니다.
다음날 후뤠시 불 밝혀 힘겹게 내려갔지만 금방 다시 올라오고 말았죠.
"에이! 테이프 틀어놯던데요" (1997년)
그럴리가 없다며 법당에 들어가봤냐고 되묻더군요.
앗차 싶어 다음날은 법당 문을 열어 봤더니 라이브 였습니다.
이스님은 염불로 음반을 내신분이였으며 수익구조가 종단과 어찌되는지는 모르겠으나
각 그랜저 다음모델의 그렌저를 끌고다니는 부티 나는 스님이었습니다.
기도 스님은 이참에 우리의 소리를 일장 강연하셨습니다.
동남아를 비롯한 불교국가에서는 사찰의 중요행사가
발생한다면 의례히 한국 스님들을 초청한다는군요.
그리한다면 일대에 근접한 사찰의 승려와 신도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는군요.
자신들은 할수 없는 한국 승려만 할수있는 신명나는 염불 때문이라는군요.
옛날에 볼거없던 시절 서커스단이 오면 동네사람 다모였죠.
그다음이 큰 굿판 벌어지면 둘러서서 구경하던게 딱 이런 모양새겠죠.
염불을 이렇게 굿,장구, 꽹과리,징을 치며 신명나게 하는 곳도
없겠지만 장단을 넣어 염불을 외우는곳도 없다는군요.
그러면서 기도 스님은 마치 탄허스님 처럼 말씀하시길,
"후일, 우리의 소리는 전세계 시장에서 반드시 한가락 하게 될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