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령군이라는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린다. 조선말 명성황후 측에서 활동하던 무속인이었다.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무속인이 국정에 개입하여 나라를 망쳤다고 말한다. 그러나 논리 비약이 있다. 당시 조선이 망한 이유는 국제정세에 대처할 국력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한 개인이 주술을 부렸다고 해서 나라를 망친 주 원인이라 하기 어렵다. 무속인 같은 점술가들은 조선에서만 활동하던 것이 아니었다.
당시 일본에서도 활동하였다. 타카시마 카에몬(高島 嘉右衛門)이 바로 그렇다. 한국에서는 그의 저서 고도역단(高島易斷)이 많이 알려져 있다. 타카시마 카에몬은 주역으로 점을 쳤다. 실력이 뛰어나서 역성(易聖)으로도 불렸다. 일본의 고위관료들은 중요한 정치적 사안을 그에게 물어봐 자문을 했다. 특히 이토 히로부미는 사돈관계인데, 많은 자문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가 점친 내용은 신문에 실리기까지도 하였다. 당시에 진령군, 타카시마 뿐만이 아니라, 대내외적으로 여러 점술가들이 활동했다.
대원군 측에는 백운학이라는 관상가가 곁에 있었다. 고종황제가 어렸을 적에 소년이던 고종황제의 얼굴을 보고 제왕이 될 것이라 평가했다. 중국에는 상병화(尙秉和)가 있었다. 청나라 말기 관료이다. 향시에 합격한 진사였다. 주역점을 잘 쳤다고 한다. 중국의 군벌 녹종린(鹿鍾麟)이 전투에 나가기전에 상병화를 찾아 자문했다. 주변 관료들의 물음에도 점을 봐주었다. 중요한 일을 결정하기에 앞서 점을 쳐본 것이었다. 이처럼 당시에 점술가를 활용하는 것이 조선에만 국한된 예외적인 일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