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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평소 박정희 매우 부정적으로 보는 편이었는데 분명히 공도 있는 인물이죠..
게다가 박정희가 살던 당시의 한국은 그야말로 세계 최 하류 국가...
지금과 같은 인권의식, 선진의식의 수준으로 판단하면 박정희에게 많은 문제점이 발견되는데..
박정희가 처했던 시대수준도 함께 볼 필요가 있다 생각합니다.
ㅋㅋ 이런 글 이제 지치네요. 한 쪽은 과도하게 박정희의 업적을 깍아내리느라 일부러인지 아닌지 환율제도등 꼭 고려해야 할 것을 누락시켜서 '별거 아니었다' 주장하기 급급하고 한 쪽은 별 검증되기도 힘든 일화들을 내밀어 오버해서 이른바 신격화하고. 중간이 없네 중간이 없어 (절망)
귀찮아서요 ㅎ 우리나라에서 환율이 가장 많이 왔다갔다한 시기가 60년대 입니다. 제도 자체도 고정환율제도에서 단일 변동환율제도로 변경되었구요. 당연히 내수에 유리한 고정환율제도 하에서는 우리 gdp가 고평가 됩니다. 이후 수출주도형으로 경제체질을 바꾸고자 시도하면서 단일 변동환율제도를 도입하고 원화가치는 여러차례 절하되죠. 애초에 달러기준 명목gdp로 고정환율제도 시기인 60년과 비교하면 명목상으로는 파이가 생각보다 별로 안커진 것처럼 보일 수 밖에 없는겁니다. (실질 gdp기준 링크는 아래를 참조하세요)
한국전쟁이후-60년대 초반 까지는 사실상 원조경제 시대고 미국에 의해 환율이 좌지우지 되는 경제적 예속국이었습니다. 그걸 뜯어 고치고 바꾸면서 중공업, 대기업중심의 틀을 잡은게 박정희구요. 당대 정치인 중에 중공업 중심개발을 주장한 건 박정희가 유일했죠, 원조경제에서 벗어나 자력으로 성장률 팍팍 찍던게 박정희정권때 입니다. 사실상 그 기틀로 한국경제가 팽창할 수 있었던 거구요. 명목gdp상으로는 박정희때가 아니라 전두환, 노태우때 가장 극단적으로 성장했는데 전두환, 노태우가 아닌 박정희에게 산업화 공로를 돌리는 이유가 이거죠.
또 두루뭉실하게 이야기하시네.
미안하지만 1964~1980년까지 단일변동 환율제도였지만 실제로는 달러고정환율제를 유지합니다.딱히 다를 바 없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물가가 폭등하니 당연히 절하될 수 밖에 없죠. 왜냐면 가공무역중심인 나라가 환율을 멋대로 정할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잘 아시겠지만, 경쟁국들과는 달리 단 한번도 무역수지 흑자를 낸 적이 없죠.
ps. 1960년 우리나라가 1인당 gdp가 29위인 소스좀 봅시다. 박정희의 등신 짓을 더 보여주는 자료라 매우 궁금하네요. ㅎㅎ
대충 검색해 오셨는지 뭐가 그리 미안하신지 모르겠네요.. 또 이렇게 말하면 자존심 싸움 병림픽 열릴까봐 조심스럽긴 하지만.. 어쨋든 틀린 주장을 하고 계십니다. 고정환율->단일변동환율로 바꾸면서 많은 것이 변화했습니다. 시간이 늦어 길게 쓰기 그러니 국가기록원 내용을 링크와 함께 첨부해 드릴게요. 요는 60년대 한국은 단일 변동환율제도하에서 '인위적으로' 몇 차례에 걸쳐 환율을 높여 원화를 평가절하시켰단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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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5윌 당시 130원이던 공정환율을 255원 하한의 단일변동환율제로 변경하고 외환증서제도를 도입하였지만, 수입쿼터제 실시 등으로 1965년 3월까지 환율은 사실상 255원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1965년 3윌에는 IMF로부터의 외환안정기금 확보를 계기로 외환증서 매매시장을 형성하고 단일변동환율제도를 본격적으로 실시하였다. 한국은행이 외환증서 시장률의 상하 2% 범위 내에서 매일 환율을 결정토록 하였으며 외환증서의 수급불균형이 발생할 경우에는 시장개입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외환증서제도를 기초로 한 단일변동환율제도의 실시에도 불구하고 외환시장 기반이 취약하여 네 차례의 대폭적인 평가절하 조치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고정환율제의 형태가 유지되었다. 즉 1969년 11월 원화환율을 291.4원에서 304.4원으로 4.4% 평가절하한 데 이어 1971년 6월에는 한국은행 집중 기준율을 종전의 328.2원에서 370.8원으로 13% 평가절하 하였다. 제1차 석유파동 직후인 1974년 12월에는 국제수지 적자 조정을 위해 399원이던 한국은행 집중 기준율을 484원으로 21.3% 평가절하하였으며, 제2차 석유파동 이후 1980년 1월에는 다시 580원으로 19.8% 평가절하하였다.
이 양반 환률 막 조작할 수 있는 줄 아나본데, 아닙니다. 그리고,
1인당 GDP 얘기하는 데 GDP얘기를 왜 하시나요? GDP 순위가 29위인게 웃긴가요? 우리나라인구가 중국,일본에 비해 적은거지 세계적으로보면 많은 쪽에 속합니다. 그리고, 중국은 1960년에도 4위였습니다. GDP는 인구빨이니까요.
그래서 1인당 GDP를 이야기 하는 거고, 순위를 이야기 하는 겁니다. 뭘 좀 알고 얘기하세요. 앵무새처럼 복붙해서 알바취급당하지 마시고.
1960년 1,877(한국) 2870(싱가폴) 5698(일본)
1980년 5,551(한국) 10,977(싱가폴) 18,606(일본)
한국 2.95 배 성장, 싱가폴 3.82배 성장 , 일본 3.26배 성장
주변국,경쟁국과 비교해 정말 좋게 말해서 많이 떨어지지 않는 비슷한 성장을 한겁니다.
다시말해, 기적은 커녕 미국 원조빨받은 나라중 평균도 못따라가는 반인반신이 아니라 반병1신의 경제신화라는 겁니다.
ppp도 결국은 환율비 달러화를 기준으로 변환하기 때문에 단일변동환율제도 하에서 이루어진 인위적인 환율변화인 60년 1달러 100원, 79년 484원을 반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위적인 환율왜곡을 교정하지 못하는 수치란 거죠. 제가 달러가 아닌 원화 기준의 실질gdp성장 자료를 제시하는 이유입니다. 더구나 ppp는 특성상 시장의 유동환율이 왜곡되지 않는 시장평균 환율제도 하에서 가장 확실한 공신력을 답보할 수 있는데 한국은 고정환율제도와 단일변동환율제도를 채택한 60~70년대는 물론이고 환율의 실질적인 유동화가 가능한 복수통화 바스켓제도가 도입되는 80년 이후에도 공신력을 이유로 쓰이지 않는 기준입니다. (복수통화 바스켓 제도도 이전보다는 제약적이긴 하지만 사실상 관에의해 환율조작이 가능하기 때문..)
60년대 ppp자료를 찾으시면서 느끼셨겠지만 한국에서 ppp가 공적으로 쓰이는 시기는 시장평균 환율제도가 도입되는 90년 이후입니다. 실제로 일반적인 ppp이론에서 역행해 60~70년대 한국은 미국에비해 상대적으로 물가가 더 많이 상승했음에도 환율또한 절상하죠(원화평가절하)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수출을 위해 환율을 올린 결과입니다. 따라서 시장 유동환율이라는 대전제가 배제된 60년과 79년 한국경제를 ppp를 통해 비교해보겠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시장 평균환율로 계산해도 후진국 ppp가 gdp보다는 높게나오는 경향이 있는데 거기에 인위적인 조정으로 환율까지 60년이 거의 4배정도 낮으니 실질 성장률이 상쇄되는 현상이 발생하는거죠.)
1인당 관련해 말씀하셨는데 저도 원화기준 1인당 실질 gdp를 기준으로 최대한 소극적으로 잡아서 약 4배라고 한거에요, 총 실질 gdp는 5~6배 정도 성장합니다. 애초에 원화기준 실질 gdp성장률이 매년 10%씩 찍는데 성장을 안했다고 하는건 현대기준으로 중국이 별로 성장 안했다는 소리나 다름없죠 ㅋㅋㅋ
아무래도 솔직히님은 ppp와 환율정책과의 상관관계 그리고 명목gdp, 실질 gdp 차이도 혼동하고 계신게 아닌가 싶네요. 왜 실질적으로 얼마나 성장했나 보려면 달라가 아니라 원화로 비교하는게 가장 정확한지, 왜 환율이 대폭 절상된 79년과 비교적 원고시대인 60년을 명목 gdp 국제랭킹을 기반으로 비교 하는게 부정확하고 의미가 없을 수 밖에 없는지 모르시는거 같아요.
그리고 애초에 전 첫 답댓글부터 1인당 실질 gdp를 기준을 포함한 자료를 링크로 걸고 이야기 하고 있었고 쭉 1인당을 기준으로 봐도 약 4배라고 설명해 드리고 있는데 뜬금없이 왜 1인당 이야기하는데 총 gdp꺼내냐고 헛발질 하시는지 도통.. 명목 gdp의 허점을 설명해도 명목 gdp 순위를 계속 들이미시는 것도 그렇고, 그냥 하고 싶은 말만 반복 하시면서 저에대한 인신공격으로 병림픽 열어보자는 생각이신지 뭔지 모르겠네요 ㅎ
그리고 경쟁국?이라고 일본, 싱가포르, 대만은 왜 들고 오셨는지ㅋㅋ 일본의 당시정부는 기적으로 자평하는 시기고 리콴유, 장개석 두 독재자는 해당 국가에서 국부취급 받는 사람들인데 뭐 박정희 띄워주기인가요?
환율이 1960년 순위를 과대평가하게 만들고 1979년 순위를 저평가하게 만들었다는님의 가설을 증명할 공인된 자료를 가지고 와서 주장을 하셔야지, 무조건 당신의견은 맞지않다라고만 우기면 끝입니까? 님의 주장은 하나부터 열까지 당연히 그럴것이다라는 주관적인 주장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님이 주장하는 내용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가져오세요. 객관성없는 주관적인 주장으로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님 주장대로라면 1960년 순위가 과소평가될수도 1979년 순위가 과대평가될수도 있었다라는 헛점이 생기는 겁니다.
ps. 1960년 GDP순위 29위를 믿는 사람은 제정신이 아니라고 먼저 도발하신건 누구죠?
병림픽운운은 적반하장이라고 생각안하세요?
그리고 이 게시물은 미시적으로는 제 의견과 조금 다르긴 합니다만, 그래도 박정희에게 우호적인 글은 님 같은 분은 아예 읽으려고도 하지 않을 것 같아 아예 박정희를 반쯤 까는 글을 읽어보시라 링크 달아 놓습니다. 요는 박정희가 경제성장에 공은 있지만 싱가폴, 대만등 이른바 아시아의 4마리 용 중에서는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데 왜 신격화 하냐는 내용입니다.
반인반신 취급받을려면 경쟁국의 경제성장과 비교해야 결론이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순위를 계속 이야기하는 데, 님이 보라고 준 우리나라 자료만 보고 뭘 압니까? 아 답답해. 누가 성장안했다고 했냐고요!
그리고, 님 자료에서 constant 2005 US $에 관한 걸 읽어보신 거 맞나요?
님이 일관되게 주장한 공신력이 없는 우리나라자료를 기반으로 한 그 부정확한 자료를 통해 만들어진 추정치를 가지고 뭘 그렇게 맹신하는 지 이해가 되질 않는 군요.
님에게 유리하면 우리나라 물가자료는 정확한거고 불리하면 부정확한건가요?
참 쉽게들 이해하네요.개인적으로 한번 생각들 해보세요.나였다면 어땠을까.식민지의 백성으로 태어나서 조국이 없는 시대..일본군ㅊ천명 모집하면 2.3천명이 지원을 하던 시대.근데 식민지 이전의 조선백성들은 풀뿌리죽도 못먹고 착취만 당했던..가미카제 특공대도 숱한 조선인들이 지원을 하고 있었던..제국주의 시대에 사상이란게 마구 휩쓸고 있었고 이 사상이란건 종교만큼이나 무섭죠.박정희는 그 당시에 만주 군사학교에 입학합니다.군생활은 극히 짧았구요.그리고 독립된 이후에 공산주의가 물밀듯이 밀려옵니다.다른 사상이죠.인민들을 해방시킨다.평등한 세상.우리들을 착취한 지주계급들을 없애자...여성들을 해방시키자..그자신 정의를 믿는 이들은 혹하질 않겠습니까.숱한 지식인들이 여기에 넘어갔죠.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노벨 문학상을 탄이들도 당대의 학자들도 공산당에 가입했죠.그러다가 그 진면목을 알고서는 나중에 전향을 하고는 했는데 그 시대는 그랬단거죠.어느게 진실인지 햇갈리는 시대였고 판단하기가 쉽지않은 시대였습니다.이걸 문제삼을 수는 없는거 아닙니까...박정희에 대해 비판을 한다면 유신이죠.그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하지만 국가의 현실에 관해 절망감을 갖던 젊은 군인들이 국가를 함 변화시켜보자고 힘을 합친것에에 관해서는 비판할 수 없다고 봅니다.그럴 가치가 있었느냐.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었습니다.3년 뒤에 국민들에게 물었고.국민들은그를 대통령에 당선 시키면서 그 당위성을 입증해주었죠.당시엔 지역감정도 없었던 시대였으니 국민들의 순수한 뜻이었다 봅니다.깡패들을 소탕하고.부패를 없애고 도심을 활보하던 간첩들을 색출하고.군인들에게 안정되게 배급이 시작되고..사회적으로 뭔가 해보자.라는 혁신이 일어났죠.이게 쿠데타입니까.개인적으로는 혁명으로 봅니다.필요한 시대에 알맞은 인물이 나왔고.국가적으로는 다행이었죠.아니었음 어땠을까요.간신히 선진국문턱에 턱걸이 할 수 있었는데..상상하기도 싫군요
쉽게 이해한다구요?
악질 친일파들이 변명이랍시고 했던 말을 그대로 가져다가 궤변을
늘어놓는 사람이야말로 단순, 아니 후안무치하다고 보는데요?
경술국치 이전부터 자결이나 의병전쟁 등으로 적극 항거한 사람들,
서슬퍼런 무단통치시기에도 무장투쟁이나 만세운동한 사람들,
중학생, 고등학생이란 어린 나이에도 일제타도를 외치며 제국주의에
맞선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시대상황 운운하는 저급한 변명 따위를 어디다...
나설 용기가 없으면 조용히 살았어야죠. 일제에 부역하며 민족을 배신하는
짓거리를 한 인간이 박정희인데 그걸 말도 안되는 저급한 논리로 옹호를 해요?
5.16은 쿠데타 맞습니다.사전적인 의미로 그렇다는거죠.하지만 무능한 왕조를 국민들이 참다못해 무너뜨리면 어떻게 평가할까요.반란입니까.희망없는 시대에 새로운 사회변혁을 이끌어냈다면 혁명이죠.국민들이 지지해주었으니 혁명아닙니까.민주화는 왜 민주화 혁명이라 합니까.그 당위성이 있었기 때문 아닙니까.그 점에서는 같은 혁명이죠
역사를 정의.도덕으로 딱 판가름하면 진실을 못보죠.4.19가 민주화 운동이다.정말 그럴까요.독재에 저항했다..실은 독재와는 상관이 없었어요.먹는 문제만 해결되었으면 뭐 문제가 되었겠습니까.4.19가 일어난 가장 큰 원인은 궁핍하고 희망없는 현실 때문이었죠.못살겠다.갈아보자.일제 식민지 때보다 더 못하다..이런 정서가 국민들에게 쫙 깔려 있었습니다.그리고 정권이 무너지고 내각제가 되었는데 별로 달라지는건 없었죠.당시의 국민들이 이승만을 미워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그가 하와이에서 죽고나서 고국에서 국장을 치뤘으니까요.개인적으로는 운동권이후에 역사가 지나치게 왜곡되었다고 봅니다.김대중때 까지만 해도 그 정도는 아니었죠.그 자신 온갖 고초를 겪었어도 그 당위성을 인정했습니다.김동길.전원책.김지하.같은 이들도 숱한 고초를 겪었지만지식인이 할일과 국가의 지도자가 할일은 다르다.그네들은 그네들만의 고충이 있다.하고 선을 그었죠.함부로 판단하질 않고 비판하질 않았습니다.개인적으로는 여기서 많은 판단의 기준이 선다고 봅니다.정말 고초를 겪은 이들과 파출소 몇번 들락날락 거린 이들이 깝죽대는..하는 짓이나 결과는 늘 엉망이고..한두번 겪어봤어야죠
이런 댓글을 쓰기전에 역사공부를 하세요.그러면 좀더 혜안이 밝아집니다.인터넷에서 지나치게 신격화하거나 가십거리로 비난하는 거와는 전혀 다른 현실과 마주칠테니까 정식으로 공부를 하세요.전원책은 수갑을 찬 인간이 맞고요.4.19당시에 대학교를 졸업한 인재들이 일할만한 일자리가 없었고.대학교는 예비실업양성소라는 자조섞인 푸념이 나오던 시대였습니다.사회전체에 미래에 대한 비전을 찾을 수가 없는 암울한 시대였고.설상가상으로 미국도 경제원조를 삭감하는 추세였죠...여자문제는..ㅋ당시엔 사회적인 분위기가 그랬어요.첩이 있었던 시대이기도 했고..김영삼.김대중을 보세요.다 본처외의 자식이 있지 않아요.6.70년 대엔 그랬단거죠.
4.19에 문제를 제기해서 당시의 실업률을 말한겁니다.4.19가 순수한 민주화 투쟁이 아니었다는 거고 전원책은 민주화 투쟁을 해서고고초를 겪었죠.역사학자란 누구를 지칭하는 겁니카.운동권에서 주축이된 검인정을 말하는 겁니카.검인정은 7쪽이니까는 국민의 의사를 대변했다.웃기지도 않아요.전부 민족사관에 입각한 학자들로 집필된거 아닙니까.거기다가 교학사에 관한 폭력은 어떻게 설명할겁니까.자기주장과 다르다고 .우리는 진실편에 있으니 모든게 합리화된다.그건가요.박근혜의 국정교과서를 욕할게 뭐 있습니카.검인정 역시도 매한가지인데요.유럽은 서로의 의견을 절충해서 하나의 교과서로 단일화했고 갈등도 줄어들었죠.아시아는 한.중.일 삼국이 제각각의 역사를 가르치니 갈등이 심한거 아닙니카.그럼 서로의 의견을 들어 절충을 해야죠.아님 각자의 의견을 실으면서 서로의 주장이 이렇다.학생들이 토론하고 판단하게 하는게 맞습니다.근데 일방적인 주장이었어요.전교조의 학습 실태를 보세요.국민들을 현혹하고 선동하고..그러면서 정의 도덕을 내세우고..진보정권에서 검인정을 만들어냈다면 지금은 보수정권이니 국정교과서가 법적으로 뭔 문제가 된다는 겁니까.자신들은 민주주의 방식이었고 국정교과서는 정부의 입김에 의한 독재의 형식이었다.ㅋ..모르는 국민들은 대부분 그렇게 이해들 하겠죠.근데 실은 똑같다는 거죠.더 치졸하고 영리하고 영악한 방식으로 .혹은 질기고 끈기있게..가면을 확 잡아당겨 벗겨버렸음 하는 심정입니다.뭐 대단한 애국주의자인양 덜떨어진 치기로 꼴깝을 떨어대는 인간들까지..그런 인간들치고 국가를 위해 뭐 하나 제대로 하는게 없는..늘 불평만 일삼고..제대로 된 인간을 단 한명도 못봤음..기업.건설.혹은 외국에 나가 죽어라고 고생한 노동자까지..그들은 전부 지난 정부의 공을 인정하지 않습니까..근데 유독 불평불만 일삼고 사회분란만 일으키는 인간들만 맨날 트집을 일삼음..
그럼 그렇지. 조금만 불리한 사실 나온다 싶으면 승복하지않고 비정상적인 논리나
불법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해결하려는게 박정희 신도들의 특징입죠.
다양한 의견 운운해놓고서는 곧바로 같은 글에서,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와 다른 주장하는 사람은
불평분자로 몰아가는 자가당착을 보이니...쯧쯧..
가셍이는 안그런줄 알았는데 좌놈들 밖에 없네..... ㅋㅋㅋ 대중이가 경부고속도로 지을려고 할때 못짓게 드러누운건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네.... 대한민국 역사상 구국의 영웅은 박정희대통령 이외에는 없다라는걸 되지도 않는 논리를 만들어서 갈겨놓았네.... 밥먹는게 해결이 되니까 다른 생각이 나는거지... 밥을 못먹을때는 생각지도 못하던 거지... 박정희대통령께서 경제개발을 한게 쉬워보이지 한국 역사상 최초의 일이고 누구도 한적이 없는 밥먹는걸 해결한거다라는걸 모르는 사람은 집안 어른들 한테 물어보고 이야기들 하슈.... 밥을 못 먹으면 모든게 없는거라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