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죽으면 끝이다'라고 말하지만
그런 사람들조차도
죽은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 '나'가 어떤 형태로 남아있다고 무의적으로 생각한다.
존재가 모태에 드는 순간부터 나의 몸, 나의 느낌, 나의 생각 등등으로
바깥의 존재에 반하는 나 자신을 인식함이 생물로써의 인간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가장 밑바닥에 숨골이 있어서 내 몸을 지구의 중력 속에서 인식하고
위치를 잡고, 몸의 신진대사를 무의적으로 행한다. 이 숨골의 기능이 뇌의 90%
이상을 담당한다고 한다.
이 위에 좀더 고차원적인 뇌의 기능을 담당하는 부분들이 덧씌워진다.
나의 느낌과 마음은 이런 육체에 의존한다. 느낌과 마음이 없는 육체는 그저 물질에 불과할 뿐이다.
나는 물질과 마음의 결합물일 뿐이다.
고정불변의 '참나'가 존재한다는 이 뿌리깊은 착각은
생명이 탄생한 이래로 축적되고, 내가 모태에 자리잡은 순간부터 끊임없이
경험되고 학습된, 세포 하나하나에까지 새겨진 것으로, 그냥 한순간 마음 먹는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부처님 시대의 수많은 아라한들은 이미 그 이전에 계속 수행하던 분들이었고
전생부터 수행을 반복하면서 윤회의 흐름을 끊고자 하셨던 분들이어서
부처님의 게송 한 마디로도 부처님의 위신에 힘입어 바로 해탈에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나란 고정불변의 존재가 없다는 걸 단순히 말이 아니라
그 밑바닥부터 철견하면 그저 두렵고 고통스럽고, 허탈하여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
부처님 시대에도 그런 마음을 표현하였던 바라문이 있었다.
진아나 참나라는 말은 영혼이라는 말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결코 쓰지 않은 용어들이다.
쓰는 순간 인간의 본성으로 볼 때 함정에 빠지고 말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추측한다.
하늘나라의 범천조차도 '나'가 존재한다는 이 뿌리깊은 착각을 벗어나지 못한
윤회하는 존재일 뿐이고, 그저 큰 공덕을 쌓아 좋은 과보를 얻은 존재일 뿐이다.
성자의 길에 들어섬은 이 '나'라는 자아가 없음을 철견함이 그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