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의 요동정벌은 실제로 이루어진 적이 없어서 이게 진짜로 정도전이 추구했는지 정말 의문이다.
일단 정도전이 요동정벌을 추진했다고 하면 이건 망국의 지름길이라고 확신한다.
당시 조선은 새왕조의 개창에 따른 내부의 통합 문제도 아직 확실하게 처리하지 못한 상태였으며, 당장 오랜 싸움을 지속할 능력도 부족한 상태였다.
애당초 위화도 회군으로 집권하고 결국 고려왕조를 무너뜨린 이성계와 정도전이 요동정벌을 주창한다는 건 성리학적 명분론에도 타당하지 못하는 모순적 행동이라 다른 신하들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지지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비적인 전쟁도 아닌 정벌을 떠나는 건 전쟁경험이 풍부한 능력있는 장수들과 병사들이 필수적이다. 게다가 충분한 재정을 바탕으로 한 보급도 중요하다. 그러나 당시 조선의 상황은 이게 아니다.
이성계가 직접 군을 끌고 요동을 정벌하러 간다면 어느정도 타당할지 모르겠다. 이성계는 왕으로서는 낙제점의 군주지만, 장수로서의 재능은 탁월하다. 오히려 1388년 위화도 회군을 하지 않고, 요동을 치러 갔으면 어땠을까 할 정도다. 다 늙은 이성계가 요동정벌을 한다는 건 무리고, 다른 무장을 내세우거나 정도전이 직접 간다는건 요동에 장사지내러 가는 것뿐이 안된다. 특히나 정도전의 주변을 봐도 걸출한 능력을 가진 무인이 없다.
혹자들은 주원장 사후 명의 내분을 틈타 요동을 점령할 수 있을거라고 말하지만, 정작 조선 역시 후계자를 어린 방석을 내세워 분란의 씨앗을 내포하고 있었고, 결국 정도전은 제거당한다. 명 역시 능력있는 연왕 주체가 건문제를 밀어내고, 영락제가 된다.
그리고 명이 무능한거 같아도, 조선의 국력으로 상대할 수 있는 국가가 아니다. 이성계가 날라다닐 시기라도 명을 상대하는건 버거울 정도로 큰 대국이다. 게다가 주원장이나 그 아들 주체(영락제)역시 군을 통솔하고 싸우는데 경험이 많은데 비해 조선은 왕자의 난이 없었다고 해도 정도전이란 전쟁경험도 없는 선비나부랭이와 어린 방석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명은 1449년 토목지변으로 일컬어지는 엄청난 참패를 당한다. 토목지변을 보더라도 무능한 지휘관(왕)이 전쟁을 하는게 얼마나 한심한 일인지 알 수 있다. 전쟁경험도 없는 왕이 환관의 말만 듣고, 친정을 나서니 대패를 하고 사로잡혔으니 말이다.
토목지변으로 오이라트에 참패를 당하지만, 명은 북경을 잘 지켜냈고, 오이라트는 물러난다.
정도전 시기의 명은 토목지변을 당했던 시절보다 월등히 전쟁수행능력이 뛰어났다. 이런 명을 상대로 요동을 정벌한다는 건 조선을 망치려고 작정하는 것이다. 요동을 점령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동을 지키고, 나아가 조선까지 지키는건 불가능하다고 본다.
고려 공민왕 시절에도 요동에 진출했다, 물러난 적이 있었고, 위화도 회군도 결국 요동의 지배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큰 것 때문이다.
정도전의 요동정벌은 국가적으로 명과 생사일전의 각오로 나서야 하는 일인데, 새로운 어린 후계자와 할 수 있는 그런 일이 아닌 것이다. 아마 진짜로 정도전이 이방원등을 제거하고 방석을 왕으로 앉혀서 요동을 쳤다면, 조선은 패가망신 했을 거라고 본다.
조선에서 군주로서의 자질은 태종 이방원이 으뜸이라고 본다. 세종시대의 찬란했던 조선의 번영은 다 태종의 공이다.
고려 공민왕 시절이 그나마 가장 요동수복의 적기였다고 보는데, 안타깝다. 나하추가 명에게 항복하고, 위화도 회군이 이루어진 이후는 요동을 점령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