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학생과 일본인 스승이 경성에 어느 술집에 들어가서 술 먹으면서 이런 저
런 말을 했다.
그
대화 중간에 학생이 이런 말을 했다.
" 대일본 제국이 조선을 합병하니 조선은 참으로 행복한 나라올시다. "
선생이
측은하게 학생을 쳐다보면 이런 말을 했다.
"
자네는 조선인이면서 어찌 그런 말을 하는가!
나와의
사적인 자라에서는 그런 아부성 말은 삼가게.
조선이
어떤 나라인데 그런 말을 하나!
강대국
조선이 이렇게 몰락한 것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네.
임진년에
조선에 출병한 일본 최고의 영웅 히데요시 공도 정복하지 못한 나라가
바로
조선이네.
메이지
유신 하기전엔 조선은 일본의 스승이요, 부모같은 존재일세.
장기도에서 화란국의 문물을 수입하고 있을때, 저 대마도에서는 조선 문물을 수
입해서
일본은 양쪽의 문물을 취하여 오늘날의 일본국이 되었지.
조선
사절단은 일본에 파견되어 일본에 많은 문물을 전해주었고, 막부 장군의
권위를
높여
주었지.. 화란, 유구 사신보다도 더 귀하게
대접했고, 일본을 방문한 중국
사신보다도
동등하게
아니 더 높게 대접 받았어. 에도 막부가 왜 조선을 그렇게 대접하는지
아나?
바로 조선이기 때문이지. 분로쿠 역 당시에 조선이 왜 일본을 이겼는지 아는가?
히데요시
당시에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강했지. 100년간 내란에서 겪은 전쟁
경험. 그리고
유럽도
탐냈던 최강의 조총에 유럽보다도 더 빠른 근대전술(3번 연달아
번갈아
가면 총을 쏘는것)
이
있어서 아시아에서 일본을 상대로 싸우는 나라는 거의 없었지.
당시
명국이 있다고 하지만, 분로쿠 역 당시에 명군이
행한 일은 조선에게는 아
무런 이득이 없는 것지.
평양성
전투 하기 직전에 일본군은 전투를 하기엔 보급이 형편이 없어서
옥수
수로 연명만 해야 했고,
추위과 풍토병으로 전투력이 크게 상실되었지. 조선군이 단독으로 공격했다면
아마 금방 함락시켜겠지. 같은 시기에 경상도 성주성에서도
조선 민병대와 관군
이 합동으로 일본군을 공격하여
금방
탈환한 것 보면 평양성의 일본군도 대체적으로
무너질 공산이 커.
그
평양성 당시엔 일본군이 전멸당할 위기에 처했지만, 명나라놈들은 대국의
아량이라면서
그냥
보내 주어서 고니시공이 병력의 1/3만 겨우 빼내어 올 수 있었지.
사실
임진년 (1592년)에 10월과 11월에 조선이 단독으로 평양성을 공격하려고
계획을 세웠지만,
명국이
방해했어. 일본을 자극하여 북진한다는 말도 안된다는 이유를 내세우면
서. 그 당시에 만일
조선군이
공격했다면 함락시킬 수는 없어도, 일본군에 큰 피해를 주고, 평양성을
그렇게 장기간
주둔할
수 가 없었을 것야 명군은 조선의 아군이 아니라 일본의 아군이지. 결국
엔.푸하하하
사실
조선 정부가
무능했지. 명군이 참전하지 않았어도, 전쟁이 그렇게 오래 클지는 않았을 것이
고,
단기간에 끝날 공산이 컸지. 국왕의 정부가 아닌 세자의 정부는 평안도, 함
경도, 경상도,
경기도, 강원도를 돌면서 전쟁을
지휘했고, 무너진 조선을 다시 일으켜 세웠지. 일본군 점령지에서도 조선 세자
가 나타나
그 곳의
행정력을
복권시키고, 관리를 파견시키고, 민병대 모집을 했지.
계사년 (1593년) 은 조선 전역에서 기근이 발생해서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황
당한 일까지 발생했지.
만일
조선에 명군이 투입되지 않았다면, 조선 팔도 전역에 주둔중이던 일본군은
아마도 계사년
봄
정도, 아니 여름정도에 조선군의 추격에
많은 병력을 상실된 체로 남해안 왜
성으로 퇴각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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