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터필러(caterpillar)’라는 말이 지난주부터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립니다. 걸그룹 에프엑스(f⒳)의 신곡 ‘레드 라이트’가 이 단어 때문에 KBS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체 무슨 뜻일까요?
KBS는 지난 주 특정상품 브랜드 이름을 사용해 방송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캐터필러’는 1925년 미국에서 설립된 중장비 제조회사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무한궤도과 같은 말’로 등재돼 있습니다. 무한궤도는 ‘차바퀴의 둘레에 강판으로 만든 벨트를 걸어 놓은 장치’입니다. 국어사전에 올랐다는 것은 이미 일상생활에서 특정 브랜드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아스피린’이나 ‘크레파스’가 대표적이죠. 아스피린은 독일의 바이엘이 1897년 개발한 진통제입니다. 크레파스는 1926년 일본의 사쿠라상회가 만든 미술도구고요. 브랜드가 보통명사로 쓰이면 법적으로 상표권을 잃게 됩니다. KBS가 적용한 기준에 따르면 ‘아스피린’이나 ‘크레파스’는 노래에 쓰이면 안 됩니다. 지난해 나온 딕펑스의 ‘아스피린’이나 아이유의 ‘크레파스’는 방송 부적격 노래였던 셈입니다. 심지어 아이유의 노래는 KBS 2TV 드라마 ‘예쁜 남자’의 OST였습니다.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황당’ 심의는 해묵은 문제입니다. 신해철의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가사가 선동적’이라며 부적격 판정을 받았습니다. 누구를 어떻게 선동한다는 것인지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지난해 싸이의 ‘젠틀맨’ 뮤직비디오는 주차금지 시설물을 발로 걷어차는 장면이 ‘공공기물 훼손’으로 비쳐진다고 심의에 걸렸습니다.
가수들은 방송사의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면 음악 프로그램은 물론 라디오 등 모든 방송활동이 금지됩니다. 이유를 받아들이기 힘들어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SM엔터테인먼트는 결국 “캐터필러를 무한궤도로 바꿔 재심의에 통과했다”고 전했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중장비 제조회사 ‘캐터필러’는 네티즌들에게 확실히 각인됐습니다. 브랜드 홍보를 막겠다는 KBS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