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보, 식사하세요. 오늘은 좋은 생선을 받아서요, 간만에 생선으로 요리를 해봤답니다. "
" 미친 여편네, 내가 지금 한가롭게 테이블에 앉아서 생선 요리 먹을 시간이 어딨어? 빵에 잼이나 발라놔.
기계란 건 항상 24시간 지켜보고 보듬어야해, 얼마나 세심하고 예민한 애인지 알아? 네깟년이 알겠냐마는. "
" 여보,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당신은 저를 사랑하시잖아요. "
" 방해하지마. "
... 정성스레 준비한 식탁엔 오늘도 저만이 앉았죠.
결혼하면 아이들이 많이 생길거니까 미리 산 식탁인데 의자가 8개나 있답니다.
우리는 이 의자에 앉아서 아이들과 둘러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영원히 함께 하기로 했었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식탁이 안쓰러워요.
언제나 저 혼자만 앉아있는걸요, 그래서 더 집이 텅 비어보여요.
남편은 외박은 하지 않아요, 바람이 난 것도 아니에요,
그는 똑똑하답니다. 그는 기계를 연구하는 학자에요!
수학을 얼마나 잘 하는데요, 전 학교 다닐 때 그에게 수학을 배웠어요.
그는 사려깊게 절 코치해줬고 그 모습에 전 반했구요.
우리는 사랑했었고 전 지금도 그를 많이 사랑하는데
그는 그땐 사랑했었고 지금은 몰라요, 다만 기계를 아주 사랑해요.
24시간 지켜주겠대요, 보듬어줘야한대요.
예민하대요, 후후후. 직업 정신이 투철한 그 이를 저는 사랑해요.
저를 사랑했었는데 이젠 기계를 사랑해요.
그의 일을 사랑해요. 전 그런 그를 사랑해요.
그는 저를 사랑할까요? 아니요, 그는 이제 절 사랑하지 않아요.
그는 기계를 사랑해요.
그럼 저는요,
제가 필요없어요.
아이도 없으니까요,
제게 사랑이 없다면 저는 엄마도 될 수 없는 거여요.
저는 저도 될 수 없는 거여요.
그가 저를 필요로 하지 않으면 저는 아무 것도 아니에요.
전 오직 그 이 생각뿐인걸요!
사랑해주세요,
예전처럼 당신 아름답다고, 당신이 좋다고,
당신을 지켜주겠다고 말씀해주세요,
아
저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답니다.
제가 저를 사랑할 수 있을 거에요,
제 생각대로 하면 그가 저를 사랑할 거라서요,
그럼 그거야말로 제가 저를 사랑할 수 있는 거에요.
전 아마 할 수 있을 거에요.
전 남편에게 수학을 배웠어요, 그가 내게 모든 걸 줬어요,
지식도 사랑도 삶의 이유까지도.
이제 제가 그에게 줄 차례랍니다!
예뻐지는거야,
그가 가장 나를 사랑할 수 있는 모습으로!
ㅡ
기계를 연구하는데 정신을 쏟느라 이틀간 밥을 굶었단 걸 깨닫았다.
문득 화가 났다. 남편이 이렇게 일에 정신을 쏟고 있는데, 대발명의 업적을 이루려면
여편네가 내조를 잘 해야 하는데 식사는 아니더라도 끼니라도 때우게 뭐라도 가져와야지.
몇 번 화를 냈다고 남편한테 식사하시라고 권하지도 않아? 이래서 이 여자가 맘에 안 들어.
나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거실로 나가봤다.
원래라면 꼬리 흔드는 강아지처럼 복종하는 눈빛으로 내게 다가와야 할 여자가 없다.
욕실에도 없다.
화장실에도 없다.
방에도 없다.
주방에는 쥐만이 썩은 빵을 물어뜯다 구석으로 도망칠 뿐이다.
이상하다, 이 여편네가 집 밖으로 나갈 땐 이야기를 하고 나갈텐데..
문득 나는 바닥에 알 수 없는 딱지가 덕지덕지 붙어있단 걸 깨달았다.
이건.. 피, 고름, 머리카락,.. 피부조직..
금발의 기다란 머리카락은 내 여편네의 걸 닮았다.
........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
나는 핏방울들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현관문 바깥으로 향해있는 자국들..
집 뒷편에 마련해둔 실험실로 향해있었다.
다가갈수록 핏자국의 색은 선명해졌고, 이윽고 문 앞에 다다른 나는 실험실 안에서 인기척이
들려오는 걸 느꼈다.
" 미릴다? "
몇 년만에 나는 그녀의 이름을 간신히 불러보았다.
" 여보! 저여요. 안에 있어요. "
조금은 안심했지만 난 화가 끓어올랐다.
" 핏자국이 있던데! 무슨 일이 있으면 있다고 얘기를 했어야지! "
" 여보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그랬죠! "
" 무슨 소리야? "
" 들어오세요, 그리고 말씀해주세요. 제가 예쁘다고요. 예전처럼 사랑해주세요. "
" 당신은 충분히 예뻐. "
" 그래도 사랑해주시지 않았는걸요, 근데 이제 예뻐요. 24시간 예뻐해주실만큼요. "
나는 그간 아내를 돌보지 않았다는 약간의 가책을 느꼈다.
스스로 자학을 했겠지, 나는 천천히 실험실 문을 열며 들어섰다..
" .... 이봐, 성형수술은 의사한테 받아야지 얼마나 위험한 지 알아.... "
" 여보 ! 저 예쁘죠? "
" 으아아아아악!! 으아악! "
" 여보! 여보! 거기 계세요? 저 예쁘죠? 그렇죠? "
' 신이시여 용서하소서 제 아내를 용서하시고 저는 부디 벌하소서 '
내가 그 실험실에서 본 아내의 마지막 모습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