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망.경.(梵.網.經., Brahmajāala Sutta, D1)
자.아.(atta)와. 세.상.(loka)에. 대.한. 62가.지. 견.해.의. 그.물.
I-1. 영속론자들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영속론자들인데 네 가지 이유로 영속하는 자아와 세상을 천명한다.
⑴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닦아서 거기에 걸맞은 마음의 삼매를 얻는다. 그는 마음이 삼매에 들어 수많은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한다[宿命通]. 즉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십만 생, 수백 생, 수천 생, 수십만 전생을 기억한다. ‘어느 곳에서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다른 어떤 곳에 다시 태어나 그곳에서는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여기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해낸다.
이것을 근거로 하고 이것에 의거해서 어떤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영속론자가 되어 영속하는 자아와 세상을 천명한다.
⑵ 하나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 두 개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 세 개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 네 개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 다섯 개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 열 개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을 기억한다.
⑶ 열 개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 스무 개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 서른 개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 마흔 개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을 기억한다.
⑷ 논리가요 해석가이다. 그는 [갖가지 방법으로] 추론하고 해석을 수반하며 자신이 스스로 규명하여 이렇게 말한다. ‘자아와 세계는 영속하나니 그것은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있다. 중생들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고 죽고 태어나지만 이 [자아와 세계]는 영속 그 자체인 것처럼 존재한다.’라고.
I-2. 일부 영속 일부 비영속론자들
네 가지 경우로 일부 영속 일부 비영속을 설하는 자가 되어 자아와 세상이 일부는 영속하고 일부는 영속하지 않는다고 천명한다.
⑴ 참으로 긴 세월이 지난 그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이 세상은 수축한다. 세상이 수축할 때 대부분의 중생들은 광음천에 나게 된다. 그들은 거기서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희열을 음식으로 삼고 스스로 빛나고 허공을 다니고 천상에 머물며 길고긴 세월을 산다.
참으로 긴 세월이 지난 그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이 세상은 [다시] 팽창한다. 세상이 팽창할 때 텅 빈 범천의 궁전이 출현한다. 그때 어떤 중생이 수명이 다하고 공덕이 다하여 광음천의 무리에서 떨어져서 텅 빈 범천의 궁전에 태어난다. 그는 거기서도 역시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희열을 음식으로 삼고 스스로 빛나고 허공을 다니고 천상에 머물며 길고 긴 세월을 살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오랜 세월 홀로 살았기 때문에 싫증과 초조함이 생겨, ‘오, 다른 중생들이 여기에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갈망하였다]. 그러자 다른 중생들이 수명이 다하고 공덕이 다해서 광음천의 무리에서 떨어져 범천의 궁전에 태어나 그 중생의 동료가 되었다. 그들도 역시 거기서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희열을 음식으로 삼고 스스로 빛나고 허공을 다니고 천상에 머물며 길고 긴 세월을 살게 된다.
그러자 그곳에 먼저 태어난 중생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범천이요 대범천이고 지배자요 지배되지 않는 자요 전지자요 전능자요 최고자요 조물주요 창조자요 최승자요 서품을 주는 자요 자재자요 존재하는 것과 존재할 것의 아버지이다. 나야말로 이 중생들의 창조자이다. 무슨 이유 때문인가? 전에 내게 ‘오, 다른 중생들이 여기에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일어났고 그러한 내 마음의 염원 때문에 이 중생들이 여기에 생겨났기 때문이다.’
뒤에 그곳에 태어난 중생들에게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존자는 범천이요 대범천이고 지배자요 지배되지 않는 자요 전지자요 전능자요 최고자요 조물주요 창조자요 최승자요 서품을 주는 자요 자재자요 존재하는 것과 존재할 것의 아버지이시다. 이 존귀하신 범천이야말로 우리들의 창조자이시다. 무슨 이유 때문인가? 우리는 이분이 여기에 먼저 계신 것을 보았고 우리는 후에 생겨났기 때문이다.’라고.
거기서 먼저 태어난 그 중생은 수명이 더 길고 더 아름답고 더 힘이 세었으며 뒤에 태어난 중생들은 수명이 더 짧았고 더 못생겼으며 더 힘이 약하였다.
비구들이여, 그런데 그 중 어떤 중생이 그 무리로부터 죽어서 이곳에 태어나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 태어나서는 집을 떠나 출가한다. 집을 떠나 출가하여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닦아서 마음이 삼매에 들어 바로 그 전생의 삶은 기억하지만 그 이상은 기억하지 못하는 그러한 마음의 삼매를 얻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존자는 범천이요 대범천이고 지배자요 지배되지 않는 자요 전지자요 전능자요 최고자요 조물주요 창조자요 최승자요 서품을 주는 자요 자재자요 존재하는 것과 존재할 것의 아버지이시다. 이 존귀하신 범천이 우리들의 창조자이시다. 그는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기 마련이며 영속 그 자체인 것처럼 그렇게 계신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 존자 범천에 의해서 창조되었다. 그런 우리는 무상하고 견고하지 않으며 수명이 짧고 죽기 마련이며 이곳에 태어났다.’라고.
⑵ 비구들이여, ‘유희로 타락해 버린 자’라는 신들이 있다. 그들은 오랜 세월 웃고 유희하는데 빠져 지냈기 때문에 마음챙김을 놓아버렸다. 마음챙김을 놓아버렸기 때문에 그 신들은 그 무리에서 죽게 되었다.
그런데 그 중 어떤 중생이 그 무리로부터 죽어서 이곳에 태어나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 태어나서는 집을 떠나 출가한다. 집을 떠나 출가하여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닦아서 마음이 삼매에 들어 바로 그 전생의 삶은 기억하지만 그 이상은 기억하지 못하는 그러한 마음의 삼매를 얻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유희로 타락하지 않은 그분 신들은 오랜 세월 웃고 유희하는데 빠져 지내지 않았다. 오랜 세월 웃고 유희하는데 빠져 지내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들은 마음챙김을 놓아 버리지 않았다. 마음챙김을 놓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 신들은 그 무리에서 죽지 않았고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기 마련이며 영속 그 자체인 것처럼 그렇게 계신다. 그러나 우리는 유희로 타락해 버려서 오랜 세월 웃고 유희하는데 빠져 지냈다. 오랜 세월 웃고 유희하는데 빠져 지냈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챙김을 놓아버렸다. 마음챙김을 놓아 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그 무리에서 떨어졌고 무상하고 견고하지 않으며 수명이 짧고 죽기 마련이며 이곳에 태어났다.’라고.
⑶ ‘마음이 타락해 버린 자’라는 신들이 있다. 그들은 오랜 세월 [분노로] 서로를 응시한다. 그들은 오랜 세월 [분노로] 서로를 응시하였기 때문에 서로의 마음을 타락하게 하였다.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타락하게 하였기 때문에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피곤하였다. 그래서 그 신들은 그 무리에서 죽게 되었다.
그런데 그 중 어떤 중생이 그 무리로부터 죽어서 이곳에 태어나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 태어나서는 집을 떠나 출가한다. 집을 떠나 출가하여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닦아서 마음이 삼매에 들어 바로 그 전생의 삶은 기억하지만 그 이상은 기억하지 못하는 그러한 마음의 삼매를 얻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마음이 타락하지 않은 그분 신들은 오랜 세월 [분노로] 서로를 응시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랜 세월 [분노로] 서로를 응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의 마음을 타락하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마음이 타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몸도 피곤하지 않고 마음도 피곤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분 신들은 그 무리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기 마련이며 영속 그 자체인 것처럼 그렇게 계신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이 타락하여 오랜 세월 [분노로] 서로를 응시하였다. 그런 우리는 오랜 세월 [분노로] 서로를 응시하였기 때문에 서로의 마음을 타락하게 하였다. 그런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타락하게 하였기 때문에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피곤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 무리에서 떨어졌고 무상하고 견고하지 않으며 수명이 짧고 죽기 마련이며 이곳에 태어났다.’라고.
⑷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논리가요 해석가이다. 그는 [갖가지 방법으로] 추론하고 해석을 수반하며 스스로 자신이 규명하여 이렇게 말한다. ‘눈이라 하고 귀라 하고 코라 하고 혀라 하고 몸이라 부르는 이런 자아는 무상하고 견고하지 않으며 변하기 마련인 것이다. 그러나 마음[心]이라 하고 마노[意]라 하고 알음알이[識]라 부르는 이런 자아는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기 마련이며 영속 그 자체인 것처럼 그렇게 존재한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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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스스로, 또한 인간들에 의해서 착각을 함으로써 이 세상을 만들었다고
또 영원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신 역시도 과보에 의해 태어나고, 그 과보가 끝나면 윤회하는 필멸의
존재일 뿐이다. 모든 이루어진 것들은 사라지기 마련이라는 이 법칙은 신도
예외일 수 없다.
이미 기원전 500년경에 인도는 이러한 철학적, 종교적 결론에 도달하였다.
조물주라고 하는, 전지전능이라고 하는 미망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봄으로써 이 윤회의 흐름에서 벗어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