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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은 사물을 볼 때 단순히 보기만 하고 관찰하지는 않죠.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출신과 현재의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손, 걸음걸이, 버릇, 시곗줄에 부착된 장식물, 옷의 실밥으로 그 사람의 인생 나머지를 알 수 있죠."
"선생은 마치 셜록 홈즈 같군요!"
"'마치' 셜록 홈즈같다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바로 셜록 홈즈입니다. 그렇지, 아서?"
"맞습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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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에 있는 에든버러 대학교. 1876년, 나는 이 대학 의대에 진학했다. 본래부터 의사를 꿈꿨던 것은 아니다. 다만, 내 어머니가 생활비를 충당하고자 세를 내 준 사람이 의사였던 게 이유라면 이유였다. 허나, 영국에서 손꼽히는 명문대인 이곳에서 내가 5년 동안 느낀 감정은 '지루함'이었다. 하나만 빼고서. 그 하나란, 바로 조셉 벨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의대 교수이자 애든버러 왕립진료소의 의사이셨다. 빅토리아 여왕은 스코틀랜드에 들릴 때마다 선생님께 진료를 받기도 했다.
독수리 부리를 연상시키는 코,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하얗게 샌 머리, 변덕스러운 방식의 괴상한 걸음걸이.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는 선생님의 경이로운 관찰과 추론을 결코 잊지 못한다. 선생님이 다른 의사들과 다른 게 있었다면, 환자를 진료하기 전에 먼저 그 사람 자체를 파악한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환자에 대한 진료에 있어 선생님이 중요시 여기는 하나의 철학이었다.
선생님은 진료실에 들어오는 환자들을 한 번 훑어보는 것만으로 그 사람의 현재를 섬뜩할 정도로 자세하게 알아맞혔다. 어떻게 그런 게 가능했던 것일까? 궁금해하는 우리에게 선생님은 항상 작은 차이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거라고 강조하셨다. 또 눈으론 보는 게 아니라 관찰을 하라고도 강조하셨다. 그리고 그럴 때면 선생님은 이렇게 외치셨다. '네 눈을 사용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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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우리에게 강의를 하고 있을 때였다. 한 남자가 강의실에 선생님을 찾아 들어온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그 남자를 한번 흘낏 보고는 말씀하셨다.
"자네, 군악대원 출신이구먼. 거기서 백파이프를 연주했고."
남자는 당황한 채 맞는다고 했다. 우리는 그 남자만큼이나 감탄해서는 어떻게 알았느냐고 선생님께 여쭸다.
"간단하지. 걸음걸이에서 한쪽 팔꿈치가 옆구리에 붙은 것을 볼 수 있네. 이는 진지에서 백파이프를 연주하는 자에게서 볼 수 있는 특징이지. 게다가 키가 아주 작지 않았나. 키 때문에 군대에서 군악대원밖에는 될 수가 없었던 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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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생님의 외래 환자 진료를 돕는 조수를 한 적이 있다. 하루는 외래를 온 남자를 진료실로 안내한 적이 있었다. 거기서 선생님은 역시 남자를 한번 흘깃 보고는 말씀하셨다.
"군에서 복무를 한 적이 있군요."
"아, 네."
"제대한 진 얼마 안 됐고요."
"네.. 맞아요."
"왕립 스코틀랜드 연대 소속이었고."
"...그렇습니다."
"서인도제도의 바베이도스가 복무지였군."
"......"
어안이 벙벙한 채 진료를 받은 남자가 나가고, 나는 선생님께 어떻게 추리한 것이냐고 여쭸다.
"선생님, 어떻게 저 남자가 군인인지 아셨죠?"
"저 사람은 아주 예의 있고 절도있는 행동거지가 몸에 베어 있었네. 그런데 반면에 모자를 벗지 않았지. 군에선 모자를 벗지 않거든. 만약 제대한 지 오래됐다면 그러지 않았을 거네. 즉,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군에서의 몸가짐들이 남아있다는 거지."
"그럼 소속과 복무지는 어떻게..?"
"간단하네. 절도있는 행동거지, 예의 바르면서도 뻐기는 태도. 그렇다면 왕립 스코틀랜드 연대 소속이었다고 추리할 수 있지. 그리고 그의 피부를 봤지? 그건 상피병이었네. 상피병은 서인도제도의 풍토병이 아닌가. 왕립 스코틀랜드 연대가 서인도제도에 파견 보내지는 곳이 바베이도스밖에 더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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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조수직을 수행하던 시절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보겠다. 그날은 한 여성이 아이를 하나 데리고 외래를 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번티슬란드에서 배를 타고 오실 땐 불편하지 않으셨나요?"
"아.. 네.. 괜찮습니다."
"같이 온 아이 언니는 누구랑 있나요?"
"아... 리스에 있는 제 언니에게 맡겼어요."
"여기에 오실 때 인버레이스 거리를 따라 지름길로 오셨군요."
"아... 네... 맞아요."
"리놀륨 공장에서 일하고 계시고요."
"......"
환자가 나가자마자 흥분한 나는 선생님께 여쭸다.
"선생님 어떻게.."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넬 때 파이프 주 억양이 들리더군. 파이프 주에서 오는 가장 가까운 배는 번티슬란드를 통하는 거지. 그녀가 들고 있던 코트, 함께 온 아이의 것이라고 하기엔 컸어. 즉, 그녀는 집에서 두 딸을 데리고 함께 외출한 뒤 중간에 언니 쪽을 어딘가에 맡기고 왔던 거야. 그녀의 신발 밑창 봤나? 붉은색 진흙이 묻어있었지. 그런 흙은 여기 에든버러 주변 100마일 이내에선 볼 수 없네. 딱 한 군데, 인버레이스 거리에 있는 식물원을 빼고는. 그녀의 오른손 손가락에 피부염, 그러한 부위에 발병하는 피부염은 번티슬란드의 리놀륨 공장 근로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특징이지. 자, 아서. 다음 환자 들어오라고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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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든버러 대학 의대를 졸업한 나는 개업의가 되었다. 하지만, 뭐, 손님.. 그러니까 환자가 많은 편은 분명 아니었다. 근처에 이미 의사들이 포화한 상태였기 때문이라고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어쨌든, 환자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해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글들을 잡지사들에 투고했다.
곧 그러한 글쓰기가 본업보다 더 즐겁게 느껴졌다. 뭐, 푼돈 벌이도 되었으니까.
글쓰기 8년째, 개업의 8년째. 나는 병원을 그만뒀다. 글쓰기는 계속했지만.
1891년 1월, 잡지에 실린 내 단편 소설이 처음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주인공이 그의 조수와 함께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이야기였다.
주인공의 이름은 홈즈, 셜록 홈즈. 한 번 흘깃 보는 것만으로 상대의 모든 것을 꿰뚫는 탐정이다. 내 은사였던 조셉 벨을 모델로 한.
참! 그의 조수이자 친우의 이름은 존 왓슨이다. 군의관 출신으로 셜록 홈즈와 함께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그리고 셜록 홈즈의 모험담을 글로 남기는 존 왓슨. 물론 모델은 나, 아서 코난 도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