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어느날 깊은 잠에 빠졌다가 눈을 떠보니 기억이 모두 사라져있다고 가정해보자.
모든 기억이 사라진 것이기에 언어도 알지 못 할 것이다.
이때 당신의 머릿 속에는 단 하나의 정신작용만 있을 것인데 그것은 "?"이다.
그러한 상태에서 당신에게 고통스런 느낌이 주어진다면 이 느낌은 좋지 않은 느낌이라고 판단을 하고 그 느낌으로부터 벗어 나기 위해서 당신은 당신의 존재상태를 변경하려 할 것이다.
당신이 현재의 안 좋은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려 할 때 당신은 온 몸을 비틀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깨달게 되었다.
당신은 지금 뜨거운 사막 한 가운데 뱀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이때
현재 인간의 형태를 지니고 있는 당신이 "나"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 "나"와 저 뜨거운 사막 한 가운데 뱀의 형태를 지니고 있는 상태에서 "나"라고 생각하는 그 "나"는 같은 "나"이다.
정도전이 불씨잡변에서 불교의 윤회론을 비판할 때 몸은 땅으로 흩어져 땅과 섞이고 기는 하늘로 흩어져 하늘과 섞이므로 윤회라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라고 하였다.
여기까지는 정도전의 논리가 맞다.
다만
정도전이 하나 간과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성(性)"이다.
테레사 수녀는 죽어서 궁극적인 존재와 하나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천국에 갔다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히틀러도 죽어서 천국에 갔다.
다만
테레사 수녀 같은 경우
다음 생에 나올 때에는 궁극적인 존재인 인간으로 태어남과 더불어 존재가치의 상승으로 이전 삶보다 보다 높은 단계를 지향하는 인간으로 태어날 것이다.
그러나
히틀러와 같은 경우에는 존재가치의 하락으로 인하여 궁극적인 존재인 인간의 형태를 취하지 못할 것이며
위의 예에서 뱀 같은 축생으로 태어나게 될 것이다.
이것을 지옥이라 한다면 지옥이라 할 수 있겠다.
히틀러가 다시 궁극적인 존재인 인간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영원처럼 느껴질 수 백, 수 천생애를 축생으로 태어나 인간이라는 궁극적인 존재의 존재유지에 이바지하여야 한다.
이것을
인과응보 또는 죄와 벌의 개념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고 또는 완벽한 시스템의 적용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궁극적인 존재와 하나된 테레사 수녀의 영혼이나 히틀러의 영혼이나 모두 기꺼이 스스로 다음 생의 과정을 받아 들이고 선택할 것인데 이는 그러한 시스템을 만든 존재가 자기 자신이고 그 시스템이 완벽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러하기에 그 시스템에 자기구속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시스템을 사람들은 "도"라 하기도 하고 "법"이라 하기도 하고 "이치"라 하기도 한다.
위의 예에서 설명한 "나"를
"참 나"라 하기도 하고 "무아"라 하기도 하고 "브라만"이라 하기도 하고 "아트만"이라 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개념들이 혼란스러운 것은 "도"라 하기도 하고 "법"이라 하기도 하고 "이치"라 하기도 하는 이 시스템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의 정확한 명칭은 "천부의 이치"이다.
이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一)과 삼(三)의 상호관계, 즉 허극과 삼태극의 상호관계를 이해하여야 하고
인간 단계에서의 성(性), 명(命), 정(精)과 심(心), 기(氣), 신(身)의 상호관계를 이해하여야 하며 나아가 우주전체를 아우르는 성(性), 리(理), 기(氣)와의 관계까지 살펴야 한다.
이것들을 다 이해하였을 때 "참 나"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앞으로의 글쓴이의 주장들이 다 옳은 것은 아닐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이러한 구도 속에서 여러분 스스로가 옳고 그름을 추궁해 나 갈 수는 있을 것이다.
아주 소중한 잔디밭이 있다.
이 잔디밭이 소중한 것은 이 잔디밭에서만 산삼이 자라나기 때문이다.
이 잔디밭에 있는 수 많은 잔디중에서 아주 아주 드물게 산삼으로 변화하는 것이 있다.
그래서 이 잔디밭이 소중하다.
그런데
이 잔디밭이 소중하다 소중하다 하니 수 많은 잔디들이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인 것으로 안다.
잔디는 흔하디 흔한 것이고 소중한 것은 산삼이다.
노자가 말하길
하늘과 성인은 인간 보기를 추구(芻狗)와 같이 한다라고 하였다.
추(芻)자는 꼴 추자요 구(狗)자는 개 구자로
하늘과 성인은 인간 보기를 가장 흔한 동식물 즉 흔하디 흔한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때가 이르게 되면 천부의 이치는 오랜 농사의 결과물인 산삼을 수확하게 될 것이요
잔디들은 다음 농사를 위하여 갈아 엎어 퇴비로 쓰이게 될 것이다.
그것이
가장 기본적인 도(道)요 법(法)이요 이치(理致)이다.
이러한 이치를 이해하신 선조들께서 후손들을 위해 예언들을 남기신 것인데 그 예언들 마저 작은 이익을 추구하는 이들에 의해 너무나도 많이 왜곡되어 있다.
천부의 이치는 펼쳐질 것이고 모든 사람들은 천부의 이치를 접하게 될 것이다.
소멸되었던 천부의 이치가 다시 펼쳐지는 이유는
보다 알찬 수확을 돕기 위함도 있겠지만
"나는 몰랐다"라는 억울함을 없게 하기 위함도 있다.
모든 잔디들에게는 알수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그 잔디들이 어떠한 선택을 하든 그것은 상관없다 그것은 그 잔디들의 몫이다.
니체는 이 시대의 잔디들을 "마지막 인간"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소중하다던 산삼들을 아마도 "초인"이라 표현한 듯 하다.
(성명정에 대한 본론은 다음 발제글에서 논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