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에서 진리에 이르기까지 성품을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불교에서는 성품을 보면 부처를 이룬다(견성성불)는 말과 같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치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성품을 닦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여래장의 작용을 관하게 되었다는 것은 부처님들의 대자대비심을 깨달았기 때문에 당연히 보게 되는 것이며, 어떤 종교이든 이치를 논하는 것보다도 성인의 성품을 배우려 하는 자세가 가장 중요합니다.
이치를 논하는 이유 또한 부처님의 자비심을 배우기 위한 과정으로써 필요한 것이며 공사상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뗏목으로 강을 건넜으면 버리라는 것이 이를 의미합니다. 부처님의 대자대비심은 일반 중생들의 자비와 다르며 불법을 배워야만 부처님의 자비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됩니다.
이는 사회생활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동료나 상사, 경쟁자들의 성품을 빨리 알아채고 그에 맞추어 행동하는 자세가 필요한데 이를 눈치라고도 합니다. 이 훈련이 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기업의 매뉴얼과 사내 분위기에도 오너의 성품이 스며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역사 공부나 세계정세, 정치 상황을 파악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역사적 흐름에만 관심 있다면 이는 이치에만 함몰된 것입니다. 역사나 세계 정세나 결국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역사 속 중요 인물들의 성품이나 그 국가의 문화적 수준(국민들의 총체적 성격, 성향)을 유추할 줄 알아야 과거 국가들이 해온 행동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정치 또한 마찬가지로 누구의 성품이 더 진실하고 수승한가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한때 부정해도 나라만 잘 운영하면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얘기가 돌았었는데, 성품이 간악한 자는 아무리 똑똑해봐야 절대 남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자들은 모든 화두가 간교한 술책에만 쏠려있기 때문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더 앞선 수를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런 자는 나라를 퇴보하게 만들며 모두를 괴롭게 만들 뿐입니다.
무지해도 성품이 올바른 자는 가르치면 됩니다. 하지만 성품이 악한 자는 아무리 가르쳐도 악한 것만 생각하며, 이는 뱀이 물을 먹어도 독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은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결국 사람의 성품을 볼 줄 알아야 진리 이전에 진실과 거짓이라도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럼 이 성품을 어떻게 해야 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항상 강조하지만 독서이며, 독서만큼 실제 체험이 또한 중요합니다. 사람의 성품은 말보다도 글을 통해 가장 직설적으로 드러납니다. 때문에 책을 많이 보아야만 마음을 보는 눈이 밝아집니다. 동시에 사회생활 속에서 여러 직급의 사람들을 간접적으로라도 경험해 보아야 합니다. 이래야 독서와 체험을 통해 통찰력이 생기게 됩니다.
수행자는 불경을 많이 보고 불경 속 각각 부처님들마다의 자비로운 성품은 같지만 그 같음 속에서도 행하는 방식과 방편과 태도가 다름을 알아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통찰력이 생겨야 전체의 성품인 무상정등각(위도 없고 아래도 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보게 됩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넘어 가리키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