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4년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에서는 루이 16세가
태어났습니다.
어려서 많은 질병을 앓아 부모를 애타게 했던 루이
16세는 2살이 되던해 유전적으로 결핵이 생겨 생사를
넘나들었다고 하며, 아이의 미래가 걱정됐던 루이
15세는 당시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했던 점성가인
집시 자린을 불러서 아이의 운명이 앞으로 어떻게
될것인가를 물어보았습니다.
아이의 별자리를 풀이하던 자린은 아이가 왕이 될것은
분명하나 21이라는 숫자를 조심하지 않으면 큰 화가
일어날것이라는 말을 하여 루이 15세 부부를 놀라게
하였고, 루이 15세는 어린 16세에게 항상 21이라는
숫자를 조심하라고 타일렀습니다.
11살이 되던해 부친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은 루이
16세는 어려서부터 도박을 좋아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다 프랑스와 이웃나라의 많은 성주들에게 빚을
졌다고 하며, 오스트리아의 왕실과 혼인하여 공주
마리 앙투아네트를 부인으로 얻은 그는 20살이
되던해 본격적인 통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통치를 하고 있을때 지방에서 왕궁을 찾아와
자신의 빚을 갚으라고 독촉하는 21명의 성주들을 만난
루이 16세는 그들이 자신에게 액운의 숫자인 21이라고
생각한뒤 빚은 꼭 갚아야 겠다고 마음을 먹고 국민들의
세금을 크게 올렸습니다.
곧이어 세금이 올라간것을 알게된 국민들은 왕궁을
찾아와 하소연을 하다 왕실 군인들에게 총맞아 죽고
감옥에 붙들려 갔고, 그때서부터 프랑스에서는 내전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1791년 6월 21일 프랑스에서 도주하려다 사람들에게
붙들린 루이 16세는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왕실에 도움을
청하려 편지등을 쓰는 일을 벌이다 감옥에 투옥된지
21일째 되던날 다른 나라 군대를 이용해 나라를 되찾으려
했던 행각이 발각나 독방에 가둬지게 됩니다.
1792년 9월 21일 프랑스가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국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된 루이 16세는 매우 침통해
하며 자기장래를 걱정하였다고 하며, 자신의 부인도
감옥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그는 오스트리아
왕실에서 프랑스를 쳐들어오기만을 손꼽아 기다
리게 되었습니다.
1793년 1월 21일 여느때와 다름없이 감옥에서
아침 산책을 나가던 루이 16세는 자신의 뒤를
쫓아온 병사들이 팔뚝을 잡고 자신을 마차위에
태워 감옥 밖으로 호송하자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감옥 밖에는 수만여명의 시민들이 야유를 하고
있었고, 길로틴에 올라가 사형이 집행된 루이
16세는 39세로 삶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루이 16세의 사형집행 이후 그의 부인 마리 앙투아
네트와 여동생 엘리자베스 역시 길로틴에 의해
처형 당하였고, 불운한 운명을 타고난 루이 16세는
끝내 프랑스의 왕정에 종지부를 찍고 처형된 인물로
남게 되었습니다.
만약 루이 16세가 예언대로 21이라는 숫자를 조심
하였다면 그의 운명은 과연 바뀔수 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