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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 유명 女탤런트와 밀접교제”
지인에 소문 전했다가 법정행… 긴급조치 9호 위반 집유 받아
197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명 여자 탤런트 집을 드나들었다는 내용의 잡담을 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유죄 판결을 받았던 가정주부가 37년 만에 억울함을 풀게 됐다.
서울고법 형사2부(부장판사 김용빈)는 1977년 긴급조치 9호를 위반한 혐의로 기소돼 이듬해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박모(72)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고 31일 밝혔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박씨는 1977년 8월 서울 강남구의 한 지인의 집에 놀러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잡담 수준에 그쳤던 박씨의 발언이 문제된 건 박정희 전 대통령이 당시 유명 탤런트였던 정모씨의 집에 드나들었다는 소문을 전하면서 시작됐다.
박씨는 탤런트 정모씨의 옆집에 사는 A씨가 알려줬다면서 ‘박 전 대통령과 비슷해 보이는 사람과 남자 3∼4명이 정씨 집에 들어갔다’는 내용을 지인에게 전달했다.
박씨는 이어 “A씨에게 당시 남자 3∼4명이 찾아와 신분증을 보여주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면서 “이에 A씨가 ‘(그 남자가) 대통령이 틀림없구나’라고 생각했다”고 지인에게 전했다.
이후 박씨는 박 전 대통령과 정씨가 밀접한 교제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허위사실을 날조·유포했다며 재판에 넘겨졌고 유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긴급조치 9호는 유신헌법에 대한 논의 자체를 전면 금지하거나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탄압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위헌·무효인 긴급조치 9호를 적용해 공소가 제기된 이 사건의 공소사실은 ‘범죄로 되지 아니한 때’에 해당하므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다”고 말했다.
“김재규는 항소심 재판이 끝날 때까지 ‘박정희를 두번 죽일 수 없다’면서 그 얘길(여성편력)를 꺼내지 않았죠. 그런데 항소이유 보충서에도 차마 담지 않은 얘기를 뒤늦게 털어놨어요. 박정희의 치부를 공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먼 훗날 역사의 교훈을 남기기 위해서 어렵게 입을 뗀 거죠”
안 변호사는 김재규의 입을 빌려 “대통령이 궁정동 안가를 찾아오는 빈도가 높았고,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 상대하는 여자로는 영화배우와 탤런트, 연극배우, 모델 등 연예계 종사가 가장 많았다고 해요. 그 숫자가 200명을 넘었대요”라고 폭로했다.
1.
장진호 17-07-15 15:05
김대중이 김일성의 지원을 받은 장학생 출신이라는 기사가 있습니다.
>>>>>>>>>>>>>>>기사 가져오길.
2. 박정희 사망 당시 궁정동 안가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3
.‘채홍사’박선호 군법회의 증언 녹취록
대통령 박정희의 ‘大行事’‘小行事’
◇10·26사건 19주년이 지났지만 사건동기는 아직 석연치 않다. 인간 박정희의 내면적 모습이 의문을 푸는 최후의 열쇠가 될지 모른다.「신동아」는 대통령 박정희의 술과 여자, 정보통치, 언론통제, 북한과의 대결주의를 다룬 「박정희의 유산」(김재홍著·도서출판 푸른숲 근간)에서 당시 중앙정보부원으로 10·26사건에 가담했던 박선호의 군법회의, 증언을 토대로 한 「박정희의 술과 여자」를 소개한다.
육여사, 박종규 뒷조사 지시
대통령 박정희에게 여자를 조달하는 일은 본래 경호실이 시작했다. 5·16쿠데타를 거사할 때부터 충직한 경호대장이던 박종규가 모든 것을 관장했다. 박은 각하의 심기관리에서부터 술자리까지 챙겼다. 군대에서 부관이나 전령병이 지휘관을 잘못 모시면 전체 분위기가 썰렁해진다는 말은 금언에 속한다. 그런 군사문화에 젖은 경호실장 박종규는 각하의 심기관리를 최우선 업무로 삼았다.
박정희의 술과 여자는 많은 비화를 남겼다. 70년대 초 어느날 대통령부인 육영수 여사를 면담한 어느 여성은 육여사의 얼굴에 멍이 든 것을 본다. 소문은 퍼지고 청와대출입기자들이 그 배경을 취재했다. 부부싸움을 하다가 박정희가 재떨이를 던졌다느니 손찌검을 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한 기자가 직접 박정희에게 물었다.
『영부인 얼굴에 멍이 들었던데, 부부싸움을 하신 겁니까?』
이 말에 대통령은 몹시 어색한 얼굴로 헛기침만 했다.
『어허, 음, 흠…』
부부싸움은 대통령의 주색 때문이었다.
육여사는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온갖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게 해주는 경호실장 박종규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육여사는 박종규 거세계획에 착수한다. 이 계획에 동원된 사람이 당시 청와대 사정담당 수석비서관 홍종철이었다. 육여사는 홍종철을 은밀히 불러 박종규의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 눈물을 글썽이며 규탄했다.
『내가 이 사람을 더 이상은 각하 곁에 놓아둘 수 없습니다. 방법이 없을까요』
이래서 홍종철은 극비리에 박종규 비리조사에 착수한다. 본인과 형제 친척들의 이권개입과 인사청탁 여부에서부터 사생활 비리 등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막강한 경호실 안테나에 안 걸릴 리가 없었다. 박종규의 귀에 사정수석실이 자신의 비리에 대해 내사하고 있으며 홍종철이 직접 지휘한다는 정보가 들어갔다. 박종규는 흥분했다. 그는 경호실에 있던 엽총을 집어들고 홍종철의 방에 뛰어 들어갔다.
전향한 거물간첩인 김용규(金用珪, 2013년 3월 사망)씨는 저서인《소리없는 전쟁》에서 북한의 공작망은 우리 사회 어느 곳까지 깊게 뻗쳐 있는지를 아래와 같이 밝힌 바 있다.
《기록대장에는 발전소, 전신전화국 등 요충부문에 점 형태로 특별 관리하던 개별적 대상도 있었고, 2∼3명 또는 4∼5명으로 구성된 조직도 있었다. 그 중에는 최근에 구성된 조직도 있고, 1960년대 초·중반에 布置(포치)된 교수와 박사들로 구성된 조직, 언론계·종교계·公共기관, 그리고 각 단체에 뿌리박은 조직들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1980년경~2010년경까지(30년 동안) 김일성 장학금으로 키워진 고시합격자가 서울에서만 1,800명이 합격했고, 대한민국은 사법부>입법부>행정부 순으로 적화가 진행 중인데 그들 중 상당수의 판사가 있다고 하니 참으로 문제이며, 전공노가 장악한 법원행정처는 공안사건을 좌익판사에게 배당한다니 요즘 이상한 판결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식민지배와 개발독재가 같은지 ㅎ 리콴유 장제스 카말 전부 독재자인데 그 나라 국민들이 그 사람들 히틀러, 일본제국주의와 동일선상에 놓는건 본적없음. 만일 박정희 시대가 식민통치에 비견될 정도로 폭압적인 수탈만이 자행되었다면 지금 장년층은 왜 그의 딸을 오로지 박정희 핏줄이라는 이유로 최다득표로 당선시켰음? 오로지 세뇌 교육의 힘? 박정희 사망하고도 40년이 되어가는데? 소위 민주정부 10년?도 경험한 세대고 신군부 박살나는거 두눈으로 똑똑히보고 군부 깨부수는 YS를 한때 근 80프로가 지지했던
세대였음. 박정희를 오로지 폭군으로 몰아서는 설명이 안되는 부분이고 그들의 경험에는 향수로 남을만큼 살만한 시대였던거임.
현대는 현대고 당시는 당시죠. 북한보다 열위에놓여있는 가난한 나라가 이념전쟁의 최전방 국가였습니다. 식민통치는 먼 과거가 아니며 동족산잔은 가까운 과거였죠.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수준도 현대에 비할바가 아니구요. 민주사회에서 독재 자체는 예나 지금이나 정의롭거나 보편타당하지 않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대중의 양태는 그 사회의 상황에 따라 다를수밖에 없습니다. 장제스가 대만에서 리콴유가 싱가포르서 반대파를 숙청한 행위가 결코 박정희와 다르게 민주적이었던게 아닙니다. 그들처럼 떠받들거나 비판을 금기시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당시상황을 감안하고 해석할 필요는 있는거죠.
박정희는 일제치하 만주군 장교이며
자진하여 남로당에 입당한 군대내의 책임자였고
국가안보에 쓰라고 지급한 무기를 국군의 명령권자인 국군통수권자에게 총부리를 드리대고,
합법적인 정권을 무너트리고,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협박한 명백한 반란죄의 죄인이 분명한데,
적반하장도 분수가 있지, 박정희를 천하에 없는 애국자라고 우겨대고 있으니..
박정희가 했다고 자랑하는 경제적 성과는,
합법적으로 세워진 민주당 정권이 잘 만든 경제개발 5개 년계획 등
잘 만든 설계도가 있어서 그것을 보고 따라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리나라의 경제건설은 실은 민주당이 한것이고, 박정희와 군부세력은 하수인에 불과했다.
그들이 그들의 불법행위를 덮기 위해서 합법적으로 정당하게 집권한 5년 단임의 정당한 대통령의
빛나는 업적을 무시 내지 고의로 깎아 내리고, 5·16반란과 유신 등 명백한 범죄행위를
사상 유례없는 애국을 한 것으로 왜곡해 국민을 헛갈리게 하고,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근본까지 흔들고 있다.
민주정치는 도덕적이고 합리적이고 합법적이라는 3대 요소를 갖춰야 한다.
이에 반하여 명예를 존중하는 군인이 강도가 하는 것 처럼
무기를 들고 반란을 일으키는 행위는 절대로 용납하거나 용인해서는 안된다.